모란미술관 35주년 ‘사물로부터’

고근호 등 작가 6인 참여 특별전

인간-사물 ‘관계 맺음’에 대한 성찰

고근호의 ‘쓰레기 반가사유상’(2024)  [모란미술관 제공]
고근호의 ‘쓰레기 반가사유상’(2024) [모란미술관 제공]

한국 현대조각의 거점으로 꼽히는 경기 남양주 모란미술관이 35년을 맞이했다. 이를 기념하는 기획전은 사물로부터 시작된다. 조각과 설치, 드로잉 47점. 고근호, 김신일, 김유정, 이순종, 이용덕, 정현 등 여섯 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전시는 미술관 내부와 건물 뒷마당을 돌아 옛 백련사 건물로 이어진다. 공간이 사물의 길을 만든다. 보는 이는 걷고, 걷는 이는 사물과 마주한다.

참여 작가들은 “사물은 더 이상 대상이 아니다”고 말한다. 누군가의 손에 들려 쓰이고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한다는 것. 인간과 얽히며 세계를 만드는 사물과의 대화는 조각의 시작이 된다.

고근호는 버려진 택배 종이 상자로 불상을 빚어냈다. 유통의 흔적을 고스란히 지닌 상자는 그 자체로 현대 소비사회의 상징이다. 작가는 여기에 민중의 생활 도구였던 방망이, 분청사기 파편을 덧붙인다. 사물 하나하나가 지나간 시간을 증언한다. 파편화된 기억과 일상의 잔재들이 모여 새로운 형상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태어난 불상은 일상의 재료에서 성스러움을 길어 올린다. 조각은 더 이상 단단한 덩어리가 아니다. 그것은 시간을 품고, 인간의 흔적을 안고, 낡은 사물과 세계를 다시 연결하는 사유의 장이 된다.

정현은 지난 30여 년간 생활폐기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왔다. 이번에는 전남 여수의 섬마을에서 작은 돌을 주워들었다. 파도에 닳고, 표면이 날카롭게 깎인 그 돌은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크기다. 하지만 그의 손길을 거치며 돌은 3D 기술을 통해 터무니없이 커졌다. 그런데 속은 텅비어 있다. 크기에 비해 무게가 미미해진 것이다. 변형된 돌은 애초 있던 자리를 떠나 낯선 미술관 전시장 한가운데 놓인다. 그곳에서 돌은 다시 말을 건다. 익숙한 사물이 낯설어질 때, 관람객의 감각이 깨어난다. 그 틈에서 의미가 자란다.

우리의 시각적 믿음을 파고드는 이용덕의 ‘역상 조각’도 전시장에 자리했다. 얼핏 보면 볼록하게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오목한 음(陰)의 공간이다. 그 순간, 우리는 시각이 얼마나 쉽게 속을 수 있는지 깨닫는다. 관람객이 움직일 때마다 공간이 따라 변한다. 오목과 볼록이 교차하는 시각적 효과를 만든다. 어쩌면 조각이 아니라 환영이다. 그렇게 우리가 믿는 감각이 얼마나 취약한지 말없이 드러낸다. 이연수 모란미술관장은 “조각에서 사물과 재료를 탐구하는 일은 단순히 물질 그 자체에 주목하자는 의미가 아니다”며 “공간과 인간,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의미를 어떻게 연결 짓고 관계 맺을 것인가에 대한 연구”라고 설명했다. 이어 “개관 이후 줄곧 조각 전문 미술관을 지향해온 우리의 정체성을 다시금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1990년 4월 개관한 모란미술관에는 국내외 현대조각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 110여 점을 비롯해 근대조각의 시조라고 불리는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의 ‘발자크’(1898)가 상설 전시돼 있다. 2010년 모란미술관이 이대우 컬렉터와 그의 어머니인 반청자 여사에게 기증받은 이 작품은 중요한 소장품 중 하나다. 전시는 다음달 29일까지 열린다.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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