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영국이 자동차, 철강, 농산물 등을 둘러싼 첫 양자 무역 합의에 도달했다. 전통적인 자유무역협정(FTA) 형식은 아니지만, 실질적인 관세 인하와 시장 개방, 산업별 상호 우대 조치가 담긴 이른바 ‘경제안보 협력 프레임워크’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영국이 미국의 경제 안보 체제에 편입되는 계획이 포함돼 있다”고 밝혀 이번 합의를 단순한 무역 조정이 아닌 전략적 연대의 출발점으로 규정했다. 전면적 관세 정책을 시행한 뒤 미국이 개별 국가와 맺은 첫 합의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협상의 핵심은 철저한 실익 교환이다. 미국은 영국산 자동차에 부과하던 27.5%의 고율 관세를 10%로 낮추되, 연간 10만 대 수출 물량으로 제한했다. 영국산 철강·알루미늄에 매겨진 25%의 관세도 철폐됐다. 그 대신 영국은 미국산 농산물, 소고기, 에탄올, 기계류 등에 대해 50억 달러 규모의 시장을 개방하기로 했다. 민감한 통상 쟁점인 디지털세는 협상에서 제외됐다. 안건과 조건을 명확히 해 서로 내줄 것과 지킬 것을 분명히 한 실리 중심의 교환이었다.
미국이 상호 관세 10%를 기준점으로 제시했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는 미국식 무역 협상의 ‘새 표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더 이상 0% 관세나 포괄적 시장 개방을 전제로 한 구(舊) FTA 모델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열렸다는 신호다. ‘경제 안보’라는 명분 아래서도 미국과 영국은 관세율, 수출입 균형, 품목별 수치까지 치밀하게 조율하며 실리를 챙겼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한국도 미국과의 통상 협상을 앞두고 있다. 반도체, 자동차, 철강과 같은 전통 산업은 물론, 배터리, 인공지능(AI), 바이오 등 신산업 분야에 대한 이해 관계도 얽혀 있다. 문제는 한국이 직면한 가장 큰 과제는 민감한 품목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미국은 소고기 시장 개방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고 정치적 부담이 큰 사안이다.
미국이 실익 중심의 협상 판을 짜고 있는 만큼, 우리도 더는 원론적 자유무역 원칙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 한미 관세 협의에 FTA를 전면 재협상하자는 게 아니라 4, 5가지 사안에 대해 협의하는 ‘스몰 딜’을 원한다는 트럼프 행정부 측의 얘기도 나오고 있다. 관세율을 제로(0)로 낮추는 것은 불가능하고 일부 관세는 유지하되, 어느 정도 인하를 합의하고, 몇가지 이슈를 상호 조율해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자는 것이다. 제한적 양보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필요하다면 민감 사안에서 일부 양보하거나 교환 가능한 분야를 주고 받아 실익을 챙기는 식의 전략이 절실하다. 영국처럼 유연하면서도 치밀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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