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100일이 이제 막 지났다. 불과 100일 만에 정말 많은 일들이 벌어진 것 같다.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적이고도 원칙이 보이지 않는 관세부과와 이에 대응하는 각국의 분주한 움직임 때문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국가별·품목별·보편·상호관세 등 이른바 ‘4종 세트’를 선언했다. 그의 전략은 폭탄선언 이후 상대방 반응을 살피면서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이후 관세 협상의 주도권을 가져가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취임 초기부터 큰소리를 친 것에 비해 아직도 관세부과를 하지 않은 품목이 있다. 바로 반도체다.
반도체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공급망 이슈의 중심에 있다. 미국 정부가 반도체법을 제정해 외국 기업에도 보조금을 지급하면서까지 제조 공장을 유치하고 있는 품목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반도체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나 전 정부의 반도체 산업 정책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는 대선 후보 시절부터 “한국과 대만 등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의 반도체 산업을 훔쳐 갔다”고 강하게 비판했으며, 보조금을 지급할 필요도 없이 관세를 부과하면 해외 기업들이 반도체 제조 공장을 미국에 건설할 것이라 장담했었다. 그리고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와 함께 반도체법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 취임 당시 그가 반도체법을 폐지하고 반도체에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했으나, 오히려 관세부과가 가장 늦은 품목이 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한 인터뷰에서 곧 반도체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지만 아직은 구체적인 관세율 등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 관세부과를 하지 않는 것인가, 하지 못하는 것인가. 불안정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반도체는 다른 제품과 달리 1997년부터 세계적으로 무관세 교역이 이뤄지고 있는 품목이다. 1997년 WTO의 정보기술협정(ITA)에 따라 반도체를 포함한 203개의 IT 제품에 대한 관세가 철폐됐기 때문이다.
당시 이러한 결정이 가능했던 것은 정보기술이 선진국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 등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선 무역자유화가 필요하다는 점에 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보기술협정을 앞장서 추진한 나라가 미국이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기 때 중국에 대해 반도체 관세를 부과했다. 이제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반도체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으로, 이는 83개 ITA 회원국으로부터 비난을 면치 못할 일이다.
반도체는 전기·전자제품의 핵심부품으로 사용되지만, 말 그대로 부품 중 하나일 뿐이다. 미국의 소비자가 스마트폰, PC 등을 구매하면 반도체가 그 속에 장착돼 있다. 그 제품들은 대부분 해외 생산 제품이다.
즉 반도체에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을 수 있다. 만약 최종 제품에 장착된 반도체에 따로 관세를 부과한다면 다른 부품들도 모두 별도의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전자제품의 가격은 폭등하고 미국인들이 그 부담을 고스란히 감수할 수밖에 없다.
반도체 품목에 대한 관세부과는 모두에게 환영하지 못할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 관세부과를 강행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경제안보·통산전략연구실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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