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식이 오는 26일(현지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앞 광장에서 엄수된다. 교황의 시신은 23일 생전 거처였던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옮겨졌고, 일반 신자의 조문이 시작됐다. 현지에 수십만명의 인파가 몰려 조문까지 몇 시간을 기다린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서울 명동성당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 빈소가 마련돼 추모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교황은 생전 종교를 초월해 전세계 인류에게 청빈과 평화의 큰 울림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2014년 방문한 한국과 각별한 인연을 맺었고 한국민에 크고 깊은 애정을 보여줬다. 2027년 세계청년대회 서울 개최를 결정하며 약속한 두번째 방한이 끝내 이뤄지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교황이 생전 소망한 한국은 전쟁 없는 평화로운 나라, 모든 생명이 안전한 나라, 약자와 빈자도 차별없이 고귀한 나라였다.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은 “교황은 대한민국의 분단 현실을 특별히 안타까워했다”며 “형제와 가족이 갈라진 이 크나큰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다면 당신께서 직접 북에도 갈 의향이 있다고 하셨을 만큼 한국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고 했다. 2014년 바티칸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난 교황은 동북아 평화와 화해,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자고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8년과 2021년 두 차례 바티칸을 찾았는데 교황은 그 때마다 방북 의지를 표했다. 교황은 방한 중엔 세월호 참사 유족을 위로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꽃동네 장애인을 만나 손을 잡았다. 이태원 참사와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경북 지역 산불 때에도 잊지 않고 기도와 위로의 메시지를 보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공동체를 위해 지도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줬다. 교황은 ‘가난한 자의 성자’를 교황명으로 택한 그 뜻 그대로 평생 청빈한 삶을 실천했다. 동성간 결합에 대한 사제들의 비공식 축복을 허락하고, 바티칸 행정에 여성의 기용을 확대했으며, 기후변화와 빈부격차 극복에 대한 메시지를 강조했다. 교회와 사회 개혁을 추구했으되 교리를 존중했고, 대중 위에 군림하지도 홀로 앞장서 가지도 않았다. 논란을 피하지 않았으되 스스로 범한 잘못에 대해선 사과를 주저하지 않았다.
교황이 한국을 찾은 지 10여년이 흘렀다. 그동안 우리 공동체는 교황이 소망한 한국으로 얼마나 더 나아갔는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 약자와 빈자의 삶은 과연 나아졌는가. 공동체의 발전과 구성원들의 삶에 복무하는 지도자를 갖고 있는가. 이제 추모의 마음은 우리 스스로를 향한 자성의 거울이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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