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회 설치됐지만 회의는 한 번도 열리지 않아

“민원 접수 없었고 회의 열리려면 당사자 요청 있어야”

21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아파트에서 방화가 일어나 방화 용의자인 60대 남성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6명이 부상을 입었다. [독자제공]
21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아파트에서 방화가 일어나 방화 용의자인 60대 남성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6명이 부상을 입었다. [독자제공]

[헤럴드경제=손인규 기자] 지난 21일 발생한 서울 관악구 봉천동 아파트 방화 사건 원인이 층간소음 갈등에 의한 것으로 지목되는 가운데 이 아파트에 설치된 층간소음관리위원회가 단 한번도 열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일정 세대 이상 공동 주택의 경우 층간소음관리위원회 설치가 의무지만 위원회에 어떠한 권한도 없다 보니 갈등 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3일 헤럴드경제 취재에 따르면 이번에 화재가 발생한 아파트에는 층간소음관리위원회가 설치돼 있지만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회의가 열리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8월 서울시는 공동주택 단지 내 갈등 및 분쟁 예방과 입주민의 주거생활 환경을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공동주택관리규약 준칙을 개정했다. 이 개정에 따라 500세대 이상 공동주택의 경우 층간소음관리위원회 설치가 의무화됐다. 그리고 올해 초 또 한 차례 개정으로 설치 기준은 700세대 이상으로 변경됐다.

방화 사건이 일어난 봉천동 아파트는 8개동, 총 1600여세대가 거주하는 공동 주택으로 층간소음관리위원회 설치 의무 대상 아파트다.

관악구 관계자는 “이 아파트에는 층간소음관리위원회가 설치돼 있었지만 지난해와 올해 회의는 한 차례도 열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며 “위원회가 열리려면 민원이 접수돼야 하는데 확인 결과 해당 아파트에서 층간소음으로 인한 민원 접수 사례는 없었다”고 말했다.

21일 발생한 방화 사건의 원인은 층간소음 갈등에 의한 것으로 좁혀지고 있다. 숨진 방화 용의자 A씨가 이 아파트에 거주할 당시 윗집 주민과 층간소음 문제로 여러 차례 충돌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21일 오전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이 아파트에 방화를 저지른 용의자의 오토바이가 발견됐다. 오토바이 뒤에는 2통의 기름통이 발견됐다. 박지영 기자.
21일 오전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이 아파트에 방화를 저지른 용의자의 오토바이가 발견됐다. 오토바이 뒤에는 2통의 기름통이 발견됐다. 박지영 기자.

실제 지난해 9월 A씨는 윗집 주민과 쌍방 폭행 시비가 붙어 경찰까지 출동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당시에는 양측이 처벌불원서를 제출해 형사 처벌은 받지 않았다.

아파트에서 주민 간 주요 다툼 원인이 되는 층간소음은 최근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이번 사건처럼 지난 몇 차례 층간소음으로 인한 인명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서울시는 층간소음관리위원회 설치로 문제 해결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위원회 설치가 의무화됐을 뿐 실제 위원회가 작동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층간소음관리위원회는 3명 이상의 위원으로 구성한다. 여기에는 보통 아파트 관리소장과 아파트 주민이 봉사직으로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위원회 자체가 어떤 법적 권한 등이 없다 보니 주민 간 갈등이 생겼을 때 할 수 있는 역할은 제한적이다.

송파구 아파트 주민 정모(55)씨는 “층간소음은 결국 당사자들이 서로 이해하고 양보해야 해결되는 사안”이라며 “제3자인 위원회가 중재 노력을 할 수는 있지만 누구 편을 들 수도 없어 사실상 큰 역할을 하지는 못할 거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서울시에서도 각 공동 주택에 대한 위원회 설치 여부만 파악할 뿐 위원회 구성, 위원회 개최 등은 공동 주택에 자율로 맡기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아파트마다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위원회 운영 방안을 일률적으로 정해서 지침을 내리기는 어렵다”며 “기준에 해당하는 아파트에 위원회가 꾸려지지 않더라도 범칙금과 같은 처벌 조항은 없다”고 말했다.

한 주택관리사는 “층간소음이라는 것이 매우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개념이어서 정량화해 적용하기는 사실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위원회가 열리려면 피해자든 가해자든 당사자들의 요청이 있어야 하는데 주민들은 본인이 직접 해결하려고 하거나 경찰에 신고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ikso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