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 항해자들은 나침반과 별자리만으로 미지의 바다를 개척했지만, 진정한 대항해시대를 가능케 한 열쇠는 바로 ‘정확한 시간’이었다. 위도와 경도를 측정해 정확한 위치를 알기 위해선 나침반과 별자리 외에도 정밀한 시계가 필요했다. 이렇게 발달하여 온 시계 제작 기술은 위성을 활용한 GPS 기술로 이어져 스마트폰, 자율주행차 등 첨단기술의 토대가 되었다. 대항해시대에서 디지털 혁명까지, 바다는 인류 진보를 자극하는 모태였다.
이처럼 항해술로 대표되었던 해양 문화는 단지 바다에서의 생활 방식이나 기술의 의미를 넘어, 문명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미래 세대가 해양을 문명의 근간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해양 문화 교육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일찌감치 해양 문화의 중요성에 주목해 왔다. 유네스코는 2025년까지 모든 회원국이 초·중등 교육과정에 해양 교육을 포함하도록 권고한다. 또한, 해양의 진정한 가치를 인식하고 경제·생활 발전에 활용할 수 있는 능력, 소위, ‘해양 문해력(Ocean Literacy)’의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 역시 청소년의 해양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자 ‘Ocean for Life’ 프로그램을 통해 해양 생태·문화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1996년 창설 이래로 해양 문화 증진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특히, 해양수산 전통 유산의 계승·발전, 해양 문화 진흥·확산 및 해양과학에 대한 인식 제고를 위해 국립해양박물관, 국립 해양과학관 등 연구·전시 시설을 확충하고 있다. 올해 초에는 영국 그리니치 박물관이 소장한 실물 시계들을 들여와 ‘항해와 시계’라는 주제로 특별전시를 진행한 바 있다. 이 전시는 해양 기술과 문명의 연결고리를 조명하고, 관람객에게 바다를 통해 문명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또한, ‘해양과학 동아리’ 운영, ‘해양과학 발명대회’ 개최 등을 통해 청소년들의 해양과학에 대한 흥미와 탐구력을 증진하고 있다.
아울러, 해양 문화 확산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을 위해 2020년 ‘해양 교육 및 해양 문화의 활성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였고, 2024년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해양 교과서 ‘인간과 해양’을 발간하였다. 이와 함께, 지난 3월에는 ‘공해상 해양 생물다양성협약(BBNJ)’을 아시아 최초로 비준하여, 국제 규범에 부합하는 해양생물 보호와 지속 가능한 해양 이용 체계를 마련하였다.
이번 달 말, 부산에서 제10차 ‘Our Ocean Conference’가 개최된다. 기후변화, 해양보호구역 등 글로벌 해양 이슈에 대해 100여 개국의 참가자들과 함께 실질적인 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항해 기술로 바다를 누비며 축적한 해양 문명사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이번 회의에서 우리나라는 해양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해양 강국의 역할을 다하고자 한다.
바다는 인류에게 도전정신과 상상력을 불어 넣어 왔다. 우리나라의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것이 아니라 바다로 열려 있다고 생각하며 세계를 향해 도전한다면, 바다는 우리를 새로운 미래로 이끌어 줄 것이다. 해양 문화에 대한 깊은 통찰이 지속 가능한 우리 삶의 나침반과 시계가 되기를 기대한다.
송명달 해양수산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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