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의 미국 현지 투자 확대를 두고 ‘국내 산업 공동화’에 대한 우려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해외 공장 설립을 단순히 국내 생산의 대체로 간주하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과 미·중 전략경쟁 심화 속에서 자국 중심주의가 부상하는 시대에 기업이 글로벌 생산거점을 다변화하고 리스크를 분산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2000년대 현대차와 기아가 미국에 공장을 지을 때도 유사한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2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결과를 알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미국 생산은 늘었지만, 국내 생산도 함께 증가했다. 국내 부품산업은 오히려 미국 진출을 계기로 새로운 기회를 얻었고, 국내 고용도 확대됐다.

2004년 대비 2024년의 수치를 보자. 현대차의 미국 내 판매는 69만대에서 171만대로, 미국 수출은 74만대에서 101만대로 각각 늘었다. 수출액은 세 배 가까이 증가했고, 부품 수출은 무려 600% 가까이 늘어났다. 이는 해외 공장이 국내 산업을 잠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글로벌 수요를 흡수하면서 국내 산업의 활력을 북돋운 선순환구조가 작동했음을 의미한다.

국내 고용도 마찬가지다. 현대차·기아의 국내 생산은 269만대에서 341만대로 늘었고, 고용인원도 8만5000명에서 11만명 수준으로 증가했다. 미국 시장에서의 성공이 국내 고부가가치 차량 생산을 확대시키는 기반이 됐고, 이는 결국 더 높은 단가의 수출과 품질 중심의 생산구조로 이어졌다.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톱 3 완성차기업으로 도약한 배경에도 미국 투자를 포함한 공격적인 해외 전략이 있었다. 만약 2000년대 초반 해외 투자에 대한 걱정만 앞세워 글로벌 시장 진출을 주저했다면 오늘날의 현대차그룹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국내와 해외라는 ‘제로섬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공은 국내 산업 기반의 확장을 의미하며 해외에서 벌어들인 이익은 국내에 재투자돼 산업경쟁력을 더 강화할 수 있다. 해외 투자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고 두려움이 아닌 기회로 바라봐야 한다. 국내 산업의 미래는 세계로 뻗어 나가는 기업들의 어깨 위에 있다. 문제는 해외 진출이 아니라 그에 뒤처지는 국내 경제정책에 있다. 기업은 글로벌 무대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데 한국의 규제와 세제는 여전히 20세기 사고에 머물러 있다. 상속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이고, 기업에 대한 사법 리스크는 늘어나며 공시 부담은 커지고 있다.

해외에서 얻은 성과를 국내에 환류시키기 위해선 그만한 유인이 있어야 한다. 기업이 국내에 본사를 두고도 해외에 공장을 짓고 기술을 개발하며 인재를 모으는 이유는 결국 경쟁력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단기적인 분배와 정치적 인기 위주의 정책에 매몰돼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제는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일자리 창출, 기술 혁신의 중심에는 언제나 기업이 있다. 과도한 규제와 징벌적 과세, 경영권 위협을 걷어내고 투명하면서도 유연한 시장을 설계해야 한다. 그래야만 해외에 나간 기업도 다시 국내에 투자하고 청년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며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지금은 기업을 의심할 때가 아니라 기업을 키워야 할 때다.

신현한 연세대 경영대 교수, 전 한국증권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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