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아연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당사자들에게는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겠지만, 필자와 같은 상법학자들에게 이번 건은 적대적 M&A의 공격방어수단에 활용될 수 있는 회사법상 수단을 재조명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고려아연의 임시주주총회 전날인 2025. 1. 22. 고려아연의 호주 손자회사인 Sun Metals Corporation Pty Ltd(“SMC”)가 고려아연의 특수관계인들로부터 영풍 주식을 약 10.32% 양수하자, 다음날 임시주주총회에서 주주총회 의장이 상법 제369조 제3항을 근거로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주식 약 25.42%의 의결권을 제한하였고, 상대방은 그러한 의결권 제한이 위법하다는 취지로 다투고 있다.
임시주주총회에서 상대방 측이 보유한 고려아연 주식의 의결권을 제한한 근거는 상호주에 관한 상법 제369조 제3항 중 ‘자회사가 다른 회사의 발행주식의 총수의 10분의 1을 초과하는 주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 그 다른 회사가 가지고 있는 모회사의 주식은 의결권이 없다’는 부분인데, 여기서 자회사는 손자회사도 포함한다. 그리고 상법 제369조 제3항의 상호주 해당 여부는 주주총회 개최일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따라서 고려아연의 손자회사인 SMC가 상대방(영풍)의 주식을 임시주주총회 전날에 10% 초과하여 양수하였다면 상대방 측이 보유한 모회사(고려아연) 주식에 대한 의결권 제한은 일견 적법하다고 보인다. 이에 대하여 SMC가 주식회사가 아니고 외국회사이므로 이 건에는 상법 제369조 제3항의 의결권 제한이 적용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그러나 호주 회사법인 Corporations Act 2001의 관련 규정 등에 따르면 SMC의 회사 형태인 Pty Ltd는 우리나라 회사법상 주식회사의 개념과 특징에 전형적으로 부합하여 우리나라 회사법상의 주식회사로 명명함에 손색이 없고, 회사법 교과서 또는 이사 등의 자기거래 상대방에 외국 회사가 포함되는지 등에 대한 법무부의 유권해석 등을 참조할 때 상호주 해당 여부 판단에 있어 중간 매개가 되는 자회사 또는 손자회사가 외국 회사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고려아연의 의결권 제한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측은 SMC의 영풍 주식 취득으로 공정거래법이 금지하는 신규 순환출자가 형성되었다는 점을 비난하기도 한다. 그런데 공정거래법 제21조 및 제22조에 따르면, 상호출자 및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규정은 ‘국내 회사’에만 적용되므로, 호주 회사가 중간에 개입된 이 건에는 공정거래법상 순환출자 금지규정이 적용될 수 없다. 공정거래법 시행령 제42조 제4호는 탈법행위를 금지하고 있기도 하지만, SMC가 합리적 경영상 판단에 의해 자기 계산으로 영풍 주식을 취득한 것이라면, 위 탈법행위에 관한 규정도 이 건에 적용될 수 없다.
고려아연의 의결권 제한을 비판하는 측에서는 기습적으로 손자회사를 통해 상대방 회사의 주식을 취득하여 의결권 제한을 의도한 행위는 소위 ‘꼼수’로서 비난받아야 한다는 취지로도 주장한다. 그런데 상법 제369조 제3항에 따른 상호주 의결권 제한은 우리나라 상법상 허용되는 몇 안 되는 경영권방어수단으로서 그 속성상 기습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판례 역시 상호주 해당 여부를 주주총회 개최일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그러한 판단에 있어 주식매매에 따른 명의개서도 요구하지 않는다. 적대적 경영권 인수를 시도하는 측의 공격을 방어하는 현 경영진이 상법이 허용하는 적법한 방어수단을 긴급하게 활용한 것을 두고 ‘꼼수’라는 용어로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아무쪼록 세계적인 경쟁력을 자랑하는 고려아연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이 부디 양 측의 양보와 협상으로 원만히 해결되기를 기원해 본다.
안태준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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