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희 개인전 ‘꾸띠아누, 누아주’
채색한 캔버스 엮어 재단하고 박음질
伊 폰타나와 비교…“회화 그 너머를 봐”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입체가 되고자 한 캔버스의 꿈일까.
어쩌면 평면에 갇히지 않으려는 지독한 갈망에서 이 모든 것이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캔버스가 찢기고, 엮이고, 봉합돼 있다. 가까이서 보면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꼬인 천 조각들이 공간을 가로지르며 부유한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서면 화폭이 자아내는 느낌이 사뭇 달라진다. 하나의 그림이 된 새로운 형태의 캔버스. 해체와 재구성을 거듭해 ‘다른 차원’으로 나아가려는 듯 살아 숨 쉬는 회화가 바로 화면 너머에 펼쳐져 있어서다.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막을 연 신성희(1948~2009) 작가의 개인전 ‘꾸띠아주, 누아주’(Couturage, Nouage)가 내달 16일까지 진행된다. 불어로 꾸띠아주는 ‘박음 회화’, 누아주는 ‘엮음 회화’를 의미한다. 신성희는 1993년부터 채색한 캔버스를 3~5㎝가량의 일정한 띠로 재단하고 박음질로 이은 꾸띠아주 회화를 시작했고, 이후에는 잘라낸 캔버스 색 띠를 다시 캔버스 틀에 씨줄 날줄로 엮어내는 누아주 작업을 했다. 화면에는 작가가 사용한 붓이 엮이기도 했다.
마대에 풀린 올과 그림자를 극사실적으로 그려내는 실력을 갖추고도 작가는 이런 그림이 “허상”이라고 했다. 그는 “공간의 영역을 소유한 실상으로서 회화의 옷을 입고 빛 앞에 서자!”고 노트에 적었다. 캔버스가 갖는 평면성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신성희의 탐구 정신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단색화와 민중미술 중심의 한국 회화사에서 자기만의 길을 개척한 그의 독특한 여정이기도 하다.
신성희의 회화는 결코 완성된 입체적 형태를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끝없이 입체가 되고자 하는 ‘상태’에 가깝다. 캔버스를 분해하고, 엮고, 매듭짓는 과정을 반복한 그의 작업 과정은 단순한 조형적 실험이 아니라 평면에 달라붙은 회화를 공간으로 밀어붙이는 끊임없는 시도였다. 그래서 그의 회화는 지금도 마침표가 찍히지 않은 채 남아 있고, 그 미완성함이 그의 조각같은 회화를 관통해 의미를 확장하고 있다.
회화의 평면성을 파괴하고 3차원적인 입체로 나아가고자 했던 신성희의 예술세계는 ‘공간주의’를 창시한 이탈리아 출신 거장 루치오 폰타나(1899~1968)와 자주 비교되곤 한다. 다만 폰타나가 캔버스에 칼자국을 내 ‘회화의 죽음’을 선언한 반면, 신성희는 캔버스를 찢고 다시 엮으면서 ‘그 너머’를 보려고 했다. 프랑스 파리 기메박물관 전 수석 큐레이터피에르 깜봉(Pierre Cambon)은 “(폰타나와 신성희의 작업은) 전혀 같은 방법이 아니다”며 “신성희는 물질의 반영, 그림자, 빛과 함께 놀이를 하는 것”이라고 평했다.
전시장에는 10년 주기로 변화한 작가의 40여 년 예술세계를 회고할 수 있는 주요 작품 32점이 관객을 맞는다. 파리를 오가며 서울 성북동 작업실에서 머물던 시기에 완성된 작업들을 비롯해 엮음 회화 연작이 대거 소개된다. 특별히 앞뒷면을 모두 볼 수 있게 천장에 매달린 박음 회화 ‘연속성의 마무리’(1993~1994)를 바라보며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로 쏟아진 빛에 매료된 작가의 심상을 떠올려 보는 것도 묘미다.
작가가 23살에 완성한 초현실주의 화풍의 3부작 회화 ‘공심’(空心)이 전시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점도 특별하다. 창문 밑에 누워있는 인물의 형상이 점차 왜곡돼 사라지는 모습을 벽지 위에 표현한 작품으로, 작가는 이 작품으로 ‘제2회 한국미술대상전’에서 특별상을 받고 유명세를 얻게 됐다.
작가는 생전에 프랑스 정부와 파리 개선문에 프랑스 국기를 모티프로 한 3색 색띠 조형물을 설치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했지만,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미완의 작업으로 남겨두게 됐다. 전시장에서 이와 관련한 시뮬레이션 작업을 엿볼 수 있는 영상이 상영된다.
한편 갤러리현대는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에 현지에 있는 팔라초 카보토에서 신성희 개인전을 열어 그를 국제무대에 선보였다.
dsun@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