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11일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7차 변론 증인으로 나와 12·3 비상계엄 당시 대통령 집무실에서 ‘언론사 단전·단수’가 써진 쪽지를 봤으나 대통령으로부터 지시를 받은 적도, 소방청장에 지시한 적도 없다고 증언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는 6일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계엄 선포 당일 윤 대통령으로부터 ‘참고하라’는 말을 듣고 ‘국가비상 입법기구’ 관련 쪽지를 받았으나 역시 관련 내용을 이행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전 장관은 “멀리서” “잠깐 얼핏” 보기만 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최 대행은 “가로로 세 번 접힌” 상태에서 받아 “내용을 보지 않고” 기재부 차관보에 줬으며, 수령 몇 시간 뒤 계엄 관련 문건으로 인지한 후에도 “무시하고 덮어놓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헌재와 국회에서 쪽지가 언급된 것은 그 내용이 계엄의 후속 조치였느냐의 여부가 쟁점이고 탄핵 심판과 내란 혐의 관련 계엄 수사에 중요한 증거인 때문이다. 이보다 우선적으로 계엄 조치 근간은 ‘포고령’에 담기는데 헌재에서의 변론과 증언에 따르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초안을 작성하고 윤 대통령이 검토 후 계엄사령관에 의해 발표됐다. 포고령 1호에선 ‘국회와 정당의 정치활동 일체를 금한다’는 1조의 위헌·불법성 여부가 탄핵 심판과 내란죄 다툼의 핵심이 되고 있다. 포고령을 두고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의 헌재 변론과 증언에선 “과거 예문을 잘못 베낀 것” “집행 가능성이 없고 상위 법규에도 위배되지만 상징적이라는 측면에서 놔둔 것”이라는 발언이 나왔다.

계엄은 국가적 변고 상황에서 대통령과 정부가 최후로 동원할 수 있는 대책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본권과 국가기관 권능 제한해 국민의 삶과 사회 질서를 일시에 바꾸어 놓는 일이다. 그런데 이를 윤 대통령과 국무위원, 계엄책임자들이 ‘복붙’(복사에서 붙임)했고, 읽어도 그만 무시해도 그만인 ‘쪽지’로 전달해 도모했다는 것이 헌재와 국회에서 당사자들이 직접 털어놓은 얘기들이다. 심지어 꼼꼼히 검토하지도 않았고, 웃으면서 넘기기도 했다는 발언까지 서슴없이 나왔다.

계엄 관련자들이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하는 진술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최고위 국정책임자들이 기껏 내놓은 발언들은 참담하기 짝이 없다. 거짓이면 범죄지만, 진실이라 해도 문제다. 중요 정책을 ‘복붙’하고,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자세로 이제까지 국정을 운영해 왔단 말인가. ‘2시간짜리 계엄’ ‘계엄이 아닌 계몽령’이라고 하는데 ‘한번쯤 해보고 안되면 말고’라는 식으로 나랏일을 해왔단 말인가. 어디까지 국민의 자존심을 떨어뜨리고, 국격을 무너뜨릴 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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