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젓가락 하실랭면’은 매주 토요일, 네 번에 걸쳐 연재됩니다. 뙤약볕에 서서 오랜 시간 줄을 서도 시원한 냉면 한 그릇 먹을 생각에 힘을 내는 사람들을 대변하고자 합니다. 다만 어느 곳의 냉면이 제일이라고 설전을 벌이기보다, 이제 막 평양냉면에 입문한 이들을 위한 친절한 가이드와 지극히 주관적인 냉면 썰 그 어디쯤을 지향합니다.>
의정부파 수장, 필동면옥
[HOOC=신보경 인턴기자] ‘식초나 겨자를 넣지 않은 육수 본연의 맛 그대로 즐겨야 한다’, ‘평양냉면집에서 비빔냉면이 웬 말이냐’, ‘면에 가위를 대서는 안 된다’
후덥지근한 여름날 시원한 냉면 한 그릇 먹는데 지켜야 할 것들이 왜 이렇게 많을까 싶다. 그런데 이같은 훈수는 음식 좀 안다고 자칭하는 평양냉면 덕후들 사이에서 불문율과 같다. 오죽하면 냉면을 먹는 법에 대해 지나치게 가르치려 드는 태도를 가리키리는 ‘면스플레인’이라는 신조어까지 낳았을까. 면스플레인은 ‘남자가 여자에게 잘난체 하며 설명하는 것’을 의미하는 ‘맨스플레인(mansplain)’에서 유래했다.
래퍼 딘딘이 전하는 평양냉면 스웨그 [사진=올리브티비 '테이스티로드' 갈무리]
불과 3~4년 전만 해도 평양냉면은 언더그라운드 음식이었다. 그런데 가수 존 박을 필두로 몇몇 ‘평뽕’ 연예인들이 평양냉면을 찬양하는 모습이 TV 브라운관과 SNS를 통해 알려졌고, 최근 매체마다 있다는 먹방(먹는 방송)이 평양냉면을 메인 소재로 다루기 시작했다. 삼삼오오 모여든 평양냉면 덕후들을 중심으로 입방아에 오르던 음식이 대중문화의 저변을 훑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면스플레인 논란은 덕후 문화가 대중문화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난 과도기적 현상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서두가 길었다. 어느 곳의 평양냉면이 본인 입맛에 더 맞는지, 식초와 겨자를 넣을지 말지는 직접 먹어보고 판단하시길.
3화. 의정부 필동면옥 서울 평양냉면의 양대 산맥은 ‘장충동파’와 ‘의정부파’다. 지난화에서 장충동파의 수장인 ‘장충동 평양면옥’에 대해 다뤘으니 이번 여정은 의정부파 역사의 뿌리 ‘의정부 평양면옥’이 되겠다. 의정부 평양면옥은 평양 출신인 김경필 할머니가 1·4후퇴 때 월남해 1969년 개업한 곳인데, 본래는 경기도 연천 전곡에 자리했던 것이 1987년 현재 위치로 터를 옮겼다. ▶관련기사 장충동파 수장 ②평양면옥
의정부파 역시 장충동파와 마찬가지로 원조 점포의 가족들이 분점을 내면서 하나의 계파를 형성했다. 현재 의정부 평양면옥은 할머니의 아들이 대를 이어 운영 중이며 을지로에 있는 을지면옥은 첫째 딸이, 충무로의 필동면옥은 둘째 딸이, 잠원동의 본가 평양면옥은 셋째 딸이 각각 운영하고 있다.
의정부파 냉면집의 큰 차이점이라면 단연 냉면 위에 뿌려진 고춧가루다. 냉면에 웬 고춧가루냐며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는 조선 시대부터 이어져 온 조리법이라는 것.
조선의 궁중 잔치를 상세하게 기록해놓은 『진찬의궤』를 보면, 궁중의 잔칫상에 주로 따뜻한 온면이 올라갔는데 특이하게도 1848년 순조 비의 육순 잔치와 1873년 경복궁 재건 잔치 때는 냉면이 올라왔다고 한다. 이때 냉면 조리에 쓰인 재료는 메밀국수, 돼지고기, 배추김치, 꿀, 잣. 그런데 1873년의 냉면에 고춧가루가 더해졌다는 기록이 있다.
왜 고춧가루가 첨가됐는지 더 자세한 설명은 없지만, 미뤄 짐작하건대 고춧가루는 메밀과 육수의 찬 기운을 매운맛으로 상쇄시키려는 선조들의 지혜가 아니었을까.
(1) 육수
의정부파 냉면 육수에는 소고기와 돼지고기가 모두 쓰인다. 돼지고기가 육수에 쓰이면 조금 더 진하고 들큼한 맛이 더해진다. 소고기 육수를 사용하는 장충동파 냉면과 비교하면 다소 기름진 감이 있지만 그 맛이 담백하고 슴슴한 것은 여느 평양냉면과 크게 다르지 않다.
(2) 면
의정부파 냉면 면발의 특징은 다른 냉면집보다 가늘고 희다는 것. 면발 색이 밝은 것은 다른 곳에 비해 더 많이 도정된 메밀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메밀 향이 다른 곳에 비해 약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메밀의 거친 느낌 없이 부드럽고 쫄깃한 면발을 즐길 수 있다.
(3) 고명
평양냉면의 고명은 소박한 편인데, 의정부파의 냉면 고명은 다른 냉면집에 비해 훨씬 단출하다. 편육과 제육 몇 점, 달걀 반쪽에 채 썬 대파, 고춧가루, 청양고추, 깨가 전부. 흔히 냉면 고명으로 쓰이는 무절임조차 찾아볼 수 없는데, 그만큼 기본기에 충실하겠다는 냉면 명가의 자신감이 아닐까.
한편 의정부파 필동면옥은 부드럽고 쫄깃한 제육과 수육으로도 유명하다. 고명으로 올려진 고기 한 점을 면으로 돌돌 감아 크게 한 입 삼키면 그 궁극의 조화에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필동면옥의 제육(돼지고기) 반 접시
(4)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평양냉면
Q. 냉면에는 왜 삶은 달걀이 올라가나요? 답: 위벽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메밀은 찬 기운을 가진 곡식이다. 빈속에 냉면을 먹을 경우 메밀면과 차가운 냉면 육수가 위벽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단백질 덩어리인 달걀을 먼저 먹으면 위벽을 보호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고 하니 속이 약한 냉면 마니아들은 이 점을 기억하자.
필자가 방문했던 날, 육수가 유난히 느끼했다. 냉면 명가에서도 육수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듯.
-가격 10,000원 -위치 서울 중구 서애로 26 -영업시간 매일 11:00~21:00 둘째 주와 넷째 주 일요일 휴무
-특징 의정부파의 상징과도 같은 고춧가루가 밋밋한 냉면 맛을 끌어올려 준다. 부지런히 들락거리다 보면 이곳의 단골로 유명한 가수 성식이형(성시경)과 높은 확률로 마주칠 수 있다.
-Tip 필동면옥에서 냉면만큼 유명한 것이 쫄깃하고 부드러운 제육(18,000원)과 수육(25,000원) 이다. 제육이나 수육은 반 접시로도 내어주니 혹여 혼자 냉면을 먹더라도 꼭 함께 맛보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