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황혜진기자]46만명이 사는 도시의 미래계획을 용역사없이 수립한 이가 있어 화제다. 용역사 없이 개인이 도시계획을 수립한 건 서울시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용역업체에 맡겼다면 8억원이 소요됐을 일이다.
주인공은 바로 구로구청 도시계획과에 근무하는 김혜진(32) 주무관으로 그는 ‘자연이 숨쉬는 디지털문화도시’란 콘셉트로 구로구 도시공간구조 재편계획을 세웠다. 말이 쉽지, 구로구의 주택ㆍ 산업ㆍ 상업ㆍ 문화ㆍ토지이용 등 세부적인 항목을 총망라한 거대프로젝트였다. 한 명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였지만 이 프로젝트는 ‘살기 좋은 글로벌 녹색 서울’을 목표로 하고 있는 서울시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다. 버려진 자투리 토지 등 지역주민이 아니고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지역정보를 깨알같이 반영한 그의 계획은 서울시가 수립 중인 ‘2030서울도시기본계획’에 중요한 참고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그가 만든 ‘서울시 최초’ 타이틀은 또 하나 있다. 김 주무관은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으로, 서울 시장앞에서 도시계획에 대해 발표한 최초의 구청 말단 계약직 공무원이다. 시장 앞 발표는 적어도 시청에선 과장급 이상, 자치구에선 부구청장 이상이 하는 게 관례였던 만큼 김 주무관은 파격 그 자체였다.
대학에서 도시계획을 전공한 김 주무관은 도시계획관련 민간업체에서 근무하다 지난 2010년 1월 구로구 도시계획 전문계약직으로 채용됐다. 그는 “민간분야에 이어 보다 큰 그림인 공공분야 도시계획에 경험과 전문성을 쌓고 싶어 안정적인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고 말했다.
전문성과 경험이 목적이었다면 구청보단 좀 더 큰 물(?)을 선택했어야 할법도 한데 그는 단호하게 구로구가 도시계획가에겐 제격이라고 강조했다. 김 주무관은 “서울시 도시계획은 이미 완료된 상태고 중앙정부는 민간도시계획전문가가 참여할 기회가 많지 않다”면서 “그나마 자치구는 강남구 등 도심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기회가 많은 상태다. 이중 구로구는 가용 준공업지역이 많아 대부분이 주거지역인 은평구, 강북구와 달리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많다”며 구로구를 택한 배경을 전했다.
계약직 신분으로 서울시장 앞에서 발표를 한다는 것은 잘하면 ‘최초’란 명예와 함께 능력을 인정받지만 잘못하면 구청장 이하 책임자들이 한꺼번에 문책을 당할수도 있는 부담스런 일이었다. 전례가 없던 일이었기에 서울시도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이성 구청장이 “발표는 계획을 세운 사람이 가장 잘 알고 제일 잘 할 수 있다”며 김 주무관을 발표자로 제안했고 박원순 시장도 흔쾌히 받아들이면서 김 주무관의 발표는 가능했다. 결과도 좋았다. 박원순 시장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지역상황을 알게 해줘서 오히려 고맙다”며 관련부서에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입사한 지 3년여, 계약직 신분으로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했다. 김 주무관은 “내가 전문지식은 있지만 공공분야 일은 처음인 만큼 잘 안다고 나서기보다 기존 직원들이 필요한 배경지식을 보조하면서 그들에게 배우려고 노력했다. 그러다보니 동료들이 나를 믿어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 주무관은 구로구의 경험을 바탕으로 서울 나아가 한국의 공공도시계획분야에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김 주무관은 “민간의 입장과 공공의 큰 그림을 아우르는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사람이 중심이 되는 진정성이 담긴 도시계획 전문가가 되는 게 꿈”이라며 “이래서 도시계획은 어려운 것 같다”며 미소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