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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국열차' 봉준호 감독 "저도 참 대책이 없었죠"(인터뷰)
영화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등의 작품으로 인간의 모습을 파헤쳤던 봉준호 감독이 ‘설국열차’로 돌아왔다.

봉준호 감독은 ‘기차’라는 매혹적인 공간에 매료돼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얻어 비좁은 일직선의 기차 안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최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봉준호 감독은 특유의 입담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끌었다. 오랜 기간 자신이 쥐고 있던 ‘설국열차’는 이제 관객들의 품으로 갔다는 말과 함께.


“‘설국열차’의 원작은 표지부터 독특했어요. 새카만 표지에 대머리 남녀가 껴안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어요. 당시 프랑스 작품이 국외에서 출판된 것은 한국이 유일했으니, 정말 우연이었죠. 열차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 같아 ‘은하철도 999’, ‘폭주 기관차’ 등 로망을 가지고 책을 집어 들었죠. 구성도 흥미진진하고 뒤로 갈수록 점점 재미있길래 ‘나 이 영화 해야겠어’라고 주변에 말했었죠. 이후 고생의 가시밭길이 될 줄 몰랐어요. 그런 걸 보면 저도 참 대책이 없어요. ‘설국열차’가 나오기 까지 8년이 걸렸어요.”

오랜 세월을 함께했던 작품이어서 그런지 이야기를 하는 봉준호 감독은 시원섭섭한 표정이었다. 이와 함께 그동한 함께 작업을 했던 송강호, 고아성을 향한 욕심도 드러냈다.

“감독과 배우의 유치한 마인드 중 하나가 항상 나랑 같이 작품을 한 배우나 혹은 감독이 생각하기에 그 작품이 최고의 작품이길 바란다는 거에요. 송강호 선배는 자신의 최고 작품으로 ‘밀양’을 꼽더라고요. 제 앞에서는 ‘살인의 추억’이라고 하지만, 이창동 감독 앞에서는 ‘밀양’이래요. 박찬욱 감독에게는 ‘박쥐’라고 하려나...아무튼 그만큼 좋은 영화를 많이 하니까 그런 말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고아성의 경우에도 ‘괴물’이 아니라 ‘여행자’라는 작품에서 역대 최고의 연기를 펼친 것 같아요. 이번에야말로 ‘설국열차’를 최고 작품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국내 배우인 송강호, 고아성 외에도 에드 해리스, 존 허트, 틸다 스윈튼, 제이미 벨, 옥타비아 스펜서, 이완 브렘너 등 쟁쟁한 배우들이 한 자리에 뭉쳤다. 봉준호 감독은 그 중에서도 크리스 에반스를 캐스팅 할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크리스 에반스의 캐스팅은 저도 의외였죠. 이미 커티스 역에 여러 후보가 있었어요. 크리스 에반스는 제가 시나리오를 보낸 게 아니라 직접 오디션 라인에 와서 줄을 섰어요. 저에 대한 이야기를 좀 들었데요. 라이징한 스타가 오디션을 보러 온다는 사실은 우리 입장에서는 고마웠었죠. 이미 ‘살인이 추억’이나 ‘마더’를 보고 온 상태였어요. 오히려 저나 송강호 선배에 대해 물어보고 좋아했어요. 여담이지만 크리스 에반스의 얼굴은 정말 예뻐서 촬영하다가 저도 가슴이 철렁할 때가 있었어요. 속눈썹이 되게 길어서 지우개를 올려놔도 될 정도거든요. 이상하게 생각하진 말아주세요. 하하”

‘설국열차’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담아놨다. 기차 안 각각의 칸들마다 다른 환경의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봉준호 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인간은 벗어나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기차 자체도 하나의 거대한 감옥이잖아요. 인간은 틀 안에 안주하고 싶어 하지만, 벗어나고 싶어하기도 해요. ‘설국열차’는 그것에 대한 드라마인 것 같아요. 인간들의 기본적인 욕구가 누구와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해 다루고 있어요. 커티스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외로워 보이기도 하는 복합적인 감정을 다뤄보고 싶었어요. 저도 물론 항상 세트장을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어요. 조감독이 대신 찍어 줬으면..하는 거죠. 벗어나봤자 더 큰 곳이 저를 둘러싸고 있겠죠.”


박찬욱, 김지운, 봉준호 감독 등 우리나라 감독들의 해외 진출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일각에서는 한국 영화가 자국 내에서 이미 포화 상태가 됐기 때문이라는 걱정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감독들의 해외 진출은 점점 익숙해질 거에요. 지금 우리나라 운동 선수들이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당연한 거고 자연스러운 거죠. 그렇다고 한류에 대한 강박이 있는 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그저 지배할 필요 없이 전체의 한 부분이면 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문화는 세계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자유로울 때 아름다운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꾸준히 작품할동을 이어오고 있는 봉준호 감독. 그가 과거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

“원래 원칙이나 구호, 가훈 등을 걸어놓고 움직이는 타입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간에 했던 작품들을 돌이켜보면 크게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첫째는 ‘영화다운 건 뭘까?’라는 생각을 항상 하는 거에요. 진정한 영화만의 흥분은 뭘까라는 생각을 항상 하는데 그 본질은 아직도 모르겠어요. 두 번째는 ‘인간은 뭘까?’라는 생각이에요.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를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인간에 대한 의문이나 질문은 항상 생기기 마련이니까요. ‘설국열차’ ‘마더’ 등에서도 그랬듯이 어떤 시나리오를 쓰더라도 그 질문은 피해갈 수 없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계속 그러겠죠.”

어쩌면 작품에 대한 즐거움과 인간에 대한 애정, 이 두 가지가 봉준호 감독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라 생각된다. 즐거움과 애정이 담긴 봉준호 감독의 새로운 작품 ‘설국열차’는 오는 7월 31일 관객들을 맞이할 채비를 마쳤다.


조정원 이슈팀기자 /chojw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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