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상수 기자] “국회다운 국회, 국민의 국회를 꼭 만들겠다.”
6선의 정세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의장에 올랐다. 국회의장 후보로 확정된 후 그가 처음으로 밝힌 포부다. 대권주자로도 오르내렸지만, 그 대신 국회의장을 택하면서 이제 정 의원은 인생 최정점에 다다랐다. 쌍용그룹 상무이사에서 출발해 국회의장까지 오른 정 의원의 정치 인생사다.
정 의원은 고려대 총학생회장 이후 쌍용그룹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7년간 재직하며 상무이사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발탁돼 정계에 입문했다.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된 건 1996년 15대 총선이다.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여의도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쌍용그룹의 경험을 바탕으로 법조계 출신이면서도 정책통으로 평가받았다.
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 등 야당의 굴곡된 역사 속에서 연이어 전북에서 국회의원을 이어갔고, 노무현 정부 땐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역임했다. 열린우리당에선 원내대표, 민주당에선 당 대표를 맡았다. 실무ㆍ행정ㆍ국회 경험을 고루 거친 셈이다.
정 국회의장의 도전은 서울로 이어졌다. 내리 4선을 했던 전북을 떠나 19대 총선에서 서울 종로구로 지역구를 옮겼다. 당시 경쟁자는 새누리당 친박계의 핵심이던 홍사덕 전 의원. 힘겨운 승부가 되리란 예상을 뒤엎고 접전 끝에 당선됐다. 당시 표차는 5091표차였다.
20대 총선 역시 고비를 맞았다. 여권 잠룡 주자로 꼽히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출마를 선언했다. 당내에서 다른 지역구 출마를 권유했지만 오 전 시장은 출마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박진 전 의원과 오 전 시장의 치열한 경선 과정부터 이목이 집중됐고, 직전까지도 정 국회의장의 낙선을 예상하는 여론조사가 줄지어 쏟아졌다. 그때에도 정 국회의장은 “종로 스타일이 있다”며 끝까지자신감을 피력했고, 결국 오 전 시장을 꺾고 6선에 성공했다.
여권 유력 대선 주자를 누르면서 정 국회의장은 대선 잠룡으로까지 분류됐으나 결국 국회의장으로 진로를 택했고, 당내 경선을 거쳐 국회의장직에 올랐다. 쌍용그룹 이사에서 3부요인으로까지 이어진 정 국회의장의 인생사다.
정 국회의장은 당 주류를 이끌던 ‘정세균계’의 수장이기도 하다. 강기정, 전병헌, 이미경, 박민수, 오영식, 최재성 전 의원 등이 20대 국회에 입성하지 못했지만, 김영주, 안규백, 이원욱 의원 등 정세균계로 분류되는 의원이 건재했다.
정 국회의장은 부드러운 리더십의 소유자로 평가받는다. ‘미스터 스마일’로 불리며 야당이 위기를 겪을 때에도 분란 없이 당을 잘 이끌었다는 평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