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해준 기자] 의료기기 제조업체에서 오랫동안 연구개발 업무를 진행하다 연구소장까지 지낸 A씨는 퇴사 후 경쟁업체 B사의 기술자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A씨는 기술자문으로 활동하면서 B사에 유사제품을 출시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중국의 상하이자동차는 한국 쌍용자동차를 인수하면서 고용유지와 신차개발 투자를 약속했다. 하지만 투자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서 완성차 생산기술과 하이브리드 관련기술 등을 중국 본사로 유출하고 쌍용차를 법정관리에 집어넣은 후 철수해버렸다.

양심불량의 극치인 중소기업의 기술유출 유형은 각양각색이고 또 비일비재하다. 경쟁 중소기업은 물론 협력업체, 대기업에서 외국기업까지 국내 중소기업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기술을 인력 스카웃이나 사업 협상 또는 인수ㆍ합병(M&A) 등을 통해 불법적으로 가로채고 있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특허청, 중소기업청, 법무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계부처가 조사한 기술유출 유형은 대략 8가지다. 특히 불법탈취한 기술이나 제품을 국내에서 내놓을 경우 바로 적발될 수 있기 때문에, 해외로 빼돌려 제품을 내놓는 경우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전ㆍ현직 임직원의 스카웃을 통한 불법적인 기술탈취다.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면서 개발한 기술이나 제품의 아이디어를 대기업이나 경쟁업체에 고스란히 넘기는 것으로, 의료와 소프트웨어 등 정보통신(IT) 분야에서 횡행하고 있다.

두번째는 협력업체 등 외부자에 의한 기술탈취다. 디스플레이 검사장비 업체인 B사의 직원은 S사와 L사에서 개발해 검사를 요청한 첨단 아몰레드(AM-OLED) 기술을 몰래 USB에 담아 해외 경쟁업체에 유출했다. 아몰레드는 일반 LCD 화면보다 응답속도가 빠르고 화질이 선명해 집중개발했으나 기술유출로 큰 타격을 받았다. 협력업체에 대한 허술한 보안의식의 허점을 노린 범죄였다.

갑을관계를 이용해 하도급거래 과정에서 기술을 빼가는 경우도 많다. 대기업 L사는 배터리라벨을 제조하는 중소기업 S사에 대해 품질관리 명목으로 기술자료의 제공을 요구해 취득한 기술로 중국 자체 생산에 유용했다. 중소기업으로선 기술유출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지만, 하청을 주는 대기업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어 기술자료를 제공했다가 피해를 입은 사례다.

사업제안 과정에서 중소기업 기술을 빼가는 경우도 있다. 모바일게임 개발업체인 벤처기업 C사는 업무제휴를 위해 M사에 기획서 및 핵심자료를 제공했으나 M사는 협의 없이 C사의 유사게임을 해외에서 출시해 피해를 입힌 케이스가 대표적이다.

기술자문 과정에서 허술한 보안의식을 틈타 몰래 기술을 빼돌리기도 한다. 기술닥터 업체인 P사는 부품세척기 개발업체 B사의 기술자문 과정에서 취득한 신기술을 B사 몰래 특허 출원한 다음, 미국의 환경회사에 유출했다가 덜미를 잡히기도 했다.

공동연구 과정에서도 기술이 유출된다. 국내 모 대학의 K교수는 지하철 광고시스템을 개발하는 A중소기업과 센서기술 공동연구를 진행하면서 취득한 신기술을 동의 없이 특허로 등록했다. 기술 공유범위에 대한 명시가 미흡한 허점을 노린 것이었다.

쌍용자동차의 케이스처럼 M&A 과정에서 기술을 빼돌리고 해당기업을 파산시켜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외국인 투자가 위축될 것을 우려해 이러한 행위에 대해 소극적으로 규제하는 정부와 관계당국의 태도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외에 기술수출이나 M&A를 추진할 때 국가 핵심기술에 대한 신고나 승인 등 행정절차를 회피하거나 관련제도를 잘 알지 못해 기술이 새나가는 경우도 있다. 국가 핵심기술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제도안내를 강화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불법적인 기술유출은 중소기업의 성장과 산업 생태계 조성은 물론 지속가능한 성장을 어렵게 하는 심각한 문제다. 이번에 정부가 경찰에 전담수사팀을 설치하고 양형기준을 강화하는 등 초강수를 둔 것은 이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심각성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