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송형근 기자] 1일 방영된 SBS ‘육룡이 나르샤’에서 정도전의 요동정벌 주장이 등장해 이목을 끌고 있다. 그렇다면 불과 10여년 전 무신 최영 요동정벌론과 차이점은 뭘까.

최영의 요동정벌의 시발점은 명나라의 철령 이북 권리 주장이다. 원을 몰아내고 중원의 패자가 된 명은 한반도 북부가 일부 포함된 지역에 관리를 파견하겠다고 고려 정부에 엄포를 놓는다.

당시 최영은 이를 두고 ‘명의 세력이 아직 확실히 크지 못했으니 요동을 칠 절호의 기회다’라며 군사를 모았다. 이견이 엇갈리지만, 학계의 중론은 명나라의 당시 군사력이 20만명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고려는 중앙군 규모가 약 5만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러나 이성계가 ‘4불가론’을 내세우며 위화도 회군을 강행해 물거품이 된다.

조선 건국 이후 재상 정도전은 또다시 요동정벌론을 들고나온다. 당시 명나라는 황권을 두고 치열한 형제간 다툼이 있었던 터였다. 후일 명나라의 기틀을 잡은 영락제가 황제에 오르기 전 권력 공백이 일정기간 존재했다.

또한 명나라 북쪽의 몽고족(북원)이 여전히 잔존했기 때문에 그는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방원의 1차 왕자의 난으로 인해서 무산됐고, 우리 역사에서 요동정벌론은 자취를 감추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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