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아이폰 잠금 해제’를 둘러싼 애플과 미국 연방수사국(FBI)간 갈등이 법정 다툼으로 비화됐다. 애플의 아이폰 잠금해제 명령을 취소해 달라는 신청서를 제출하자, 구글과 페이스북 등 대형 IT기업들도 가세했다. 국가 안보냐 개인의 프라이버시냐의 문제가 FBI와 범IT 기업들 법정다툼이라는 2라운드에 들어간 것이다.
애플은 2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중부지구 연방지방법원에 낸 잠금해제 명령 취소 신청서에서 “이것은 아이폰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FBI가 법원을 통해서 위험한 권력을 추구하고 있는 것에 대한 문제다”라며 “그 권력은 전세계 수억명의 보안과 사생활을 침해하기 위해 애플 같은 회사를 강제할 수 있는 능력이다”라고 주장했다.
미국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등 IT기업들도 애플의 입장을 지지하는 법정의견서를 다음주 중에 미국 법원에 제출할 계획이다. 법정의견서는 소송과 무관한 제삼자가 법원의 판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할 목적으로 제출하는 서류다.
IT기업들이 이렇게까지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IT 시장의 존립 기반인 ‘보안’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에서 불고 있는 핀테크나 소비ㆍ유통 시장에서의 O2O서비스, 자동차 시장에서의 커넥티드 카 등 전 산업 부문에서 일고 있는 IT 혁명은 보안이 뚫리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의 안드루스 안시프 ‘디지털 단일 시장’ 담당 집행위원도 “만약 암호시스템에 약간의 뒷문들이 있고 누군가 그 결과를 조작할 수있는 열쇠들을 갖고 있다면 누가 전자투표를 신뢰하겠냐”면서 “이는 전자금융 등의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한 마디로 ‘보안’에 모든 걸을 걸고 있는 IT관련 산업이 통째로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크다는 것이다.
IT업체들은 그간 보안 강화를 위해 무던히도 노력해왔고, 그 중에서도 애플은 독보적인 기술력을 자랑해왔다. 일례로 아이폰은 경쟁제품인 안드로이드폰에 비해 월등한 보안능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포린폴리시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애플 사용자의 91%는 자동으로 암호화되는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데 비해 안드로이드 사용자는 34%만 암호화가 가능한 안드로이드를 사용하고, 그마저 자동으로 암호화되지는 않는다.
이와 함께 FBI의 주장대로 센버너디노 총기테러범 사예드 파룩의 아이폰 5c 한 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파룩의 아이폰을 해제하기 위해 또 다른 프로그램 ‘뒷 문(back door)’을 만들거나, ‘만능키’를 만드는 것은 위험한 선례를 남길 수 있다.
중국이나 파키스탄, 터키, 러시아 등에서도 애플에 뒷 문을 만들어 놓으라는 압력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팀 쿡 애플 CEO가 지난 17일 성명에서 “(뒷문을 만드는 것은) 위험한 선례를 만드는 것일 뿐 아니라, 해커나 전체주의적 정부들이 사용할 수 있는 열쇄를 만들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터키에선 2014년 3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시 총리였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전화통화를 감청한 녹음파일 등이 대거 유포되자 트위터와 유튜브 등 SNS 접속을 전면 차단한 적도 있었다. ‘뒷 문’이나 만능키가 언제든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중국의 인권운동가들은 벌써부터 애플에 중국 정부의 사찰에 사용될 수 있는 기술적 뒷 문을 만들지 말라고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애플로선 중국에서의 사업도 신경써야 한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중국, 홍콩, 대만 등 중화권에서의 애플 비중은 현재 10%에 불과하다. 하지만 2018년에는 미국을 넘어서 가장 큰 시장이 될 전망이다. 이번에 FBI의 요구에 굴복해 기술적 뒷 문을 만들면 중국이라는 시장을 영영 놓칠 수 있다. 실제 구글의 리서치 회사는 지난 2010년 중국 정부의 검열요구에 밀려 아예 중국 사업을 접어야 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또 다른 문제다. 팀 쿡 애플 CEO가 24일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아이들과 가족 등 공공의 안전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것 역시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면서 “(FBI의 요구에 협조하는 것은) 국민을 심각한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주장한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애플도 이날 법원에 낸 명령 취소 신청서에서 아이폰 잠금장치를 해제하라는 법원의 명령이 수정헌법 제1조와 제5조의 취재에 위배된다며 “아이폰 잠금장치를 해제하라는 명령을 수용하는 것은 현재 아이폰을쓰고 있는 사용자들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해킹과 신원 도용, 정부의 도감청 등에 악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는 비단 아이폰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면서 “법무부와 FBI가 법원을 통해 의회와 미국민이 부여하지 않은 ‘위험한 힘’을 추구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전 세계 수억 명의 기본적 안전과 프라이버시를 뒤흔드는 문제”라고 밝혔다.
하지만, 테러에 대한 두려움이 9ㆍ11테러 이후 최고조에 달한 상황에서 여론의 시각이 꼭 애플편에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난 22일 퓨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중 애플을 지지하는 이는 38%에 불과했다. 14명을 살해한 테러범을 처벌하기 위해 제한적으로 인권을 제한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논리에서다.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은 이날도 열린 하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서 애플이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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