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6일 금융감독원에서 눈에 띄는 자료가 하나 나왔다.
증권사들이 주가연계증권(ELS)을 너무 많이 팔아 투자자 위험도가 크게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항셍중국기업지수(HSCEI·H지수) 등 투자자들이 잘 알기 어려운 해외 지수가 ELS 기초자산에 너무 많이 사용된다는 얘기도 포함됐다.
각 증권사에선 “잘나가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는 불만들이 터져나왔다. 금융당국의 지나친 규제 때문에 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볼멘 소리도 나왔다.
H지수는 홍콩 증시에 상장돼 있는 34개 우량 중국 기업들을 묶어 만든 지수다.
해외투자자들은 중국 본토 투자에 제한이 있어 H지수를 통해 중국 기업에 간접 투자하는 방법을 선호한다.
그런데 지난해 초 중국 증시가 천정부지로 치솟자 국내 증권사들은 앞다퉈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 발행을 늘리기 시작했다. ‘중위험 중수익’ 바람을 앞세우고서다.
증권사 판매원은 ‘지난 5년동안 손실난 적이 한번도 없다’는 달콤한 말로 투자자들을 유혹했다.
2015년에 발행된 ELS규모는 총 76조원 가량인데, 이 가운데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는 절반을 훌쩍 넘는 46조원 수준이다.
하지만, 증권사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H지수는 지난 14일 8500선이 무너졌다. 지난 13일 기준 원금 손실구간에 들어간 ELS 상품은 144개에 이른다. 금액으로는 1509억원 규모다.
이들 상품들은 상품 만기까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지수가 회복되지 않을 경우 원금이 손실된다.
H지수가 추가 하락할 경우 추정되는 손실금액은 적게잡아도 수조원 규모에 이른다.
그나마 투자 피해를 막은 것은 금감원 등 금융당국의 역할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8~9월 사이 금융 당국은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 발행에 제한을 가했다.
조기상환된 금액만큼만 ELS재발행을 허용해주는 등의 규제가 가해진 것이다.
진웅섭 금감원장은 지난해 9월 국회에서 “홍콩지수에 대한 쏠림 현상이 있기 때문에 발행 잔액 감축 방안을 지도 중”이라고 했다.
금감원의 규제는 효과가 있었다.
2분기 급증했던 H지수 ELS가 3분기에는 2.2% 늘어나는 것에 그친 것이다. 4분기에는 ELS 위험성이 부각되며 ELS 발행이 소폭 감소했다.
이 때마다 증권사들은 “지금이 저점이다. 지금이 ELS를 더 팔아야 할 때다. ‘갑 행세’한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결과만 놓고보면 금감원의 제약은 적절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3분기 증권사들의 실적이 2분기 대비 반토막이 난 것은 H지수 급락 탓에 ELS 헤지비용 증가가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2분기 대비 3분기에 삼성증권의 영업이익은 65%, KDB대우증권도 46%, 미래에셋증권도 62% 각각 급락했다.
연초부터 급락하는 중국 증시는 ELS 공포로 다가온다.
전문가들은 H지수가 7000 이하로 떨어지면 대략 3조6000억원 가량의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 분석하고 있다.
‘아직 10% 가량 여유가 있다’며 우려할 수준이 아니란 증권사의 분석은 더이상 고객들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번 중국 펀드 폭락사태를 보면 2011년부터 시작된 브라질 채권 투자가 연상된다.
당시 국내 증권사들은 브라질 국채에 앞다퉈 투자했다. 가격이 싸니 크게 베팅해 왕창먹자는 심산이었다.
지난해 10월 기준 삼성, 미래, 신한금투가 판매한 브라질 채권 잔액은 대략 6조원 가량이다.
지난 한해 동안 브라질 헤알화 가치는 50% 가까이 폭락했다.
막대한 손실이 날 경우 증권사들이 내놓을 답도 예상된다.
’투자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 정도다. 앞으로 H지수가 오를지, 더 떨어질지는 알 수 없다. 문제는 ‘돈이 된다’는 얘기만 돌면 우르르 몰려가는 증권사와 투자자들의 묻지마 근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