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극장가는 어느 해보다 뜨거웠다. 올 한 해 1,186편(2015.12.27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가 극장가를 찾았고 한국 영화는 4년 연 속 1억 명의 관객을 돌파했으며, 3년 연속 2억 명 이상의 총관객수를 기록했다. 상반기는 외화가, 하반기는 한국영화가 폭발적인 흥행을 일으키며 나란히 극장가를 나눠가졌고, 특히 한국영화는 여름 성수기 시즌 두 편의 천만 영화를 탄생시킨 것은 물론 복고부터 사극, 액션,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영화들이 선전을 펼쳤다. 올해도 변함없이 많은 관객들에게 웃음과 눈물을 선사하며 사랑 받은 한국영화들 틈에서 높은 기대와 달리 아쉬운 성적을 보였던 영화들을 짚어보았다.◆ 허삼관2015년 새해 당당히 극장가 포문을 열었던 ‘허삼관’은 위화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감독 하정우가 ‘롤러코스터’(2013) 이후 첫 상업영화 연출을 맡아 화제를 모았다. 여기에 하정우와 하지원의 부부호흡부터 전혜진, 장광, 성동일, 이경영, 조진웅, 김성균 등 역대급 그랜드 캐스팅으로 기대감을 드높였다. 하지만 영화 ‘허삼관’은 원작 ‘허삼관 매혈기’와 결을 달리한다. 원작 속 공간적 배경을 1960년대 전쟁 직후 가난했던 한국사회로 옮겨와 사회풍자를 그려내는 한 편의 블랙코미디가 될 것으로 기대됐던 ‘허삼관’은 매혈을 통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눈물겨운 부성애와 감독 하정우 식 유머만이 남은 소동극이 되었다. ‘매혈’이라는 요소가 관객들에게 공감대를 선사하지 못하며 동시기 개봉작이었던 ‘국제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평면적으로 그려졌고, 시퀀스 간의 헐거운 이음새들이 감정의 흐름을 끊고 뜬금없는 전개라는 느낌을 선사하며 극 후반 신파적 요소가 억지 눈물을 이끌어낸다는 반감으로 이어졌다. 또한 허삼관과 그의 아들 일락을 제외한 수많은 캐릭터들이 갈등과 신파를 이끌어내기 위한 도구적인 존재로 소모돼 아쉬움을 남겼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시대적 낭만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감독 하정우의 바람과는 달리 낭만은 없고 눈물만 남은 가족애로 총 관객수 95만의 성적표를 손에 쥐게 된 ‘허삼관’. 아쉬운 성적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남긴 것은 ‘허삼관’ 속 감독 하정우의 개성이 묻어나는 연출은 앞으로 그가 선보일 연출작에 대한 일말의 기대와 성인 연기자 못지 않은 뛰어난 감정연기를 선보인 아역배우 남다름이라고 자부할 수 있겠다.◆ ‘협녀: 칼의 기억’지난 8월 개봉한 ‘협녀: 칼의 기억’은 이병헌과 전도연의 만남만으로도 믿고 보는 영화가 되었고, ‘은교’를 통해 충무로 뉴페이스로 자리매김한 김고은이 합류해 화려한 연기력의 향연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또한 중국영화의 소유물로 여겨지던 무협이라는 장르를 한국형으로 재탄생시켜 장르 개척의 선두주자에 설 것으로 기대되었다.하지만 주연을 맡은 배우 이병헌의 스캔들은 이 모든 기대치를 바닥으로 추락시켰고, 이병헌은 어디서든 고개를 숙였다. 개봉 시기는 연기되었고, 상대적으로 파이가 커지는 여름 성수기 시즌에 개봉해 반사이익을 기대했으나 꼼수는 통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이병헌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었다. 같은 시기 쌍천만을 일궈낸 ‘암살’과 ‘베테랑’에 비해 상대적으로 영화의 완성도 자체에서도 비판을 면치 못했던 것. 한국형 무협영화는 온데간데 없고 중국 무협영화를 따라하기에 급급했으며, 서로 다른 목표를 향한 칼 끝에서 복수와 욕망, 연민 등 캐릭터의 내4면을 깊이 있게 파고 들지 못해 액션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조했다는 멜로도 실종되고 말았다. 또한 유백과 월소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혼란을 겪는 홍이를 연기한 김고은은 이병헌, 전도연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연기력으로 지적을 받았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무협보다 멜로를 강조한 ‘협녀: 칼의 기억’은 100억원대 제작비가 투입돼 관객수 350만명의 손익분기점에 턱없이 부족한 43만명을 기록했다. 이러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남긴 것은 11년 전부터 ‘협녀’의 이야기를 구상했던 만큼 박흥식 감독이 보여준 디테일함과 미쟝센은 한국형 무협의 가능성을 제기했으며, 스캔들로 인한 수많은 질타 속에서도 관객들의 통일된 의견을 불러일으켰던 이병헌의 흔들림 없는 연기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도리화가’‘건축학개론’을 통해 국민 첫사랑으로, 또 아이돌 가수가 아닌 배우로 자리매김한 수지가 조선 최초 여류소리꾼 진채선 역을 맡아 3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했다. 여기에 ‘최종병기 활’을 시작으로 ‘광해, 왕이 된 남자’, ‘명량’ 등 사극 장르에서 흔들림 없는 티켓파워를 발휘해 온 류승룡이 가세했다.‘서편제’를 잇는 판소리 영화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 것과는 달리 ‘도리화가’ 속 진채선은 여자는 판소리를 할 수 없었던 시대에 맞서는 비극적인 운명을 지닌 소리꾼에서 동경하는 스승 신재효에 대한 연정을 품는 여인의 모습으로 귀결돼 진채선의 성장기도 신재효와의 러브스토리도 아닌 애매한 끝맺음을 남겼다. 또한 ‘영화의 장르가 수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수지의 외면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그려졌지만 소리를 하고 싶다는 진채선의 상처와 내면은 깊이 있게 담아내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도리화가’는 판소리 영화로서의 음악적 성취도, 비극적 운명에 맞선 인물의 성장기도, 사제 간의 미묘한 멜로도 어느 하나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며 관객들에게 어떠한 공감대도 감동도 선사하지 못했다. 더불어 ‘여배우의 덕목은 애교’라는 주연배우 류승룡의 발언은 여성 관객들에게 반감을 불러일으켰고, 그의 좋은 연기마저 잡아먹은 악재로 작용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누적관객수 31만명을 기록한 영화 ‘도리화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 최초의 여류소리꾼의 이야기를 통해 판소리에 도전한 수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낼 만하다. “예쁘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는 수지의 말처럼 전작 ‘건축학개론’의 청초한 첫사랑 이미지에서 벗어나 진정성 있는 연기로 흥행 참패와는 별개로 배우 배수지의 가능성을 확인시켰다. ‘국제시장’부터 ‘암살’, ‘베테랑’까지 한 해 동안 세 편의 천만 영화를 탄생시키며 양적 성장을 일궈낸 한국영화들 사이에서 비록 관객들의 큰 호응을 받지 못하고 ‘망작’의 꼬리표를 달게 되었지만 이 영화들이 남긴 것을 통해 다가올 2016년에도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 배우와 발길을 이끄는 작품들이 나타나길 기대해 본다. idsoft3@reviewsta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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