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말 운동하는 시간을 제외한 여유시간에 평일에 못 봐 챙겨보는 드라마가 있으니 퓨전사극 ‘육룡이 나르샤’다.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난 이방원과, 이방원의 스승이자 이성계의 책사(策士)인 정도전을 중심으로 한 조선 건국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고려 말기 국내외 정세가 또한 눈길을 끈다. 구체제를 옹호하는 기득권 세력과 개혁을 기치로 내거는 신세력 간 ‘피’의 충돌, 최고 리더인 왕과 관료들의 부패와 그들의 무능함에 분개하여 행동에 나서는 힘없는 민초 등 시대의 ‘맨틀(mantle)’이 완전히 뒤집힐 때 벌어지는 사건들은 그 정도와 모양새는 다르지만 인류의 역사 속에서 끊임 없이 반복돼 왔던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문득 동일한 시대 배경을 가진 여타의 사극에 비해 유독 이 드라마에 내 자신이 심취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런데, 회를 거듭할수록 상승하는 시청률로 가늠한다면 드라마에 몰입하는 것은 필자뿐 만은 아닌 듯하다. 사극의 소재는 역사 그 자체이지만, 드라마로 탄생하는 순간 다양한 변주를 시도하게 된다. 현실이 용해되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의 역사를 해석하는 사람들이 현재를 사는 사람들이므로, 지금 우리의 자화상이 반영되지 않는다면 시청자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힘들 것은 자명한 일이겠다.
‘육룡이 나르샤’에서도 지금 우리의 모습은 여지 없이 발견된다. 여-야간 갈등, 여권과 야권의 내부 갈등, 기회의 양극화를 자조적으로 표현하는 금(은)수저-흙수저 논란 등 시대는 완전히 바뀌었지만, 계층간 갈등과 사회문제는 신기하리만치 비슷한 모습이다. 조선은 고려를 하루 아침에 피로써 빗장을 내리게 했던 쿠데타식 건국으로 세워진 나라가 아니라 신-구 세력이 엎치락뒤치락하는 과정을 겪었던 점을 상기할 때 더욱 현재와 닮은 꼴이다. 드라마의 결론은 작가가 아니니 알 수 없지만, 여말선초의 결과물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혼란의 시대에 변혁을 이끄는 새로운 지도자가 시대의 맨틀을 완전히 뒤집고 새 나라를 건국했다는 사실이다.
최근 몇 년 간 기업체, 대학 등에서 마련되는 강연이나 세미나에서 리더십은 단골메뉴다. 기업 내부 문화를 이야기할 때도 리더십은 빼놓을 수 없는 주제다. 그렇다면,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는 왜 이토록 리더십을 갈구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리더다운 리더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리더(leader)’라는 말은 무려 1300년경부터 문헌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리더십(leadership)’이라는 어휘가 세상에 태어난 것도 200년 가량 됐다고 한다. 시대별로 많은 학자들이 리더십에 관한 새로운 조류를 제시했다. 1940년대 막스 베버가 주창한 ‘카리스마 리더십’에서부터 1970년대 제시된 ‘서번트 리더십’ 등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의 스타일도 변모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리더십의 본질과 핵심은 무엇일까. 최근 필자가 천착해 있는 주제에 감히 결론을 말하라면 ‘희생’이다. 하나를 더 보태자면 책임지는 자세다. 지금 현재 우리 사회는 책임지는 리더를 갈구하고 있다. 경영정상화를 명분으로 직원들은 대량 감축하면서 자신의 연봉은 결코 줄이지 않는 리더, 직원들에게 회사를 믿고 최선을 다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정작 자신은 직원들을 믿지 못하는 리더, 그들에게선 희생도, 책임지는 자세도 찾을 수 없다. 직원들을 위해 희생할 줄 모르는 리더가 하청업체를 배려하고 공생을 지향할 리 만무하다.
평생 회계사로 일하며 수많은 기업의 리더를 만나면서 느낀 것이 있다. 직원보다 더 낮은 자세, 직원을 위해 희생했던 리더가 이끄는 기업들은 어떠한 위기 앞에서도 굳건한 복원력을 발휘할 수 있더란 사실이다. 그들은 굳이 리더십이란 말로 포장하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익숙한 ‘덕(德)’이라는 배려의 노력을 켜켜이 쌓았던 리더들이다.
신문지상에 작금의 우리 경제가 1990년대 중반 끔찍했던 IMF 직전과 비슷한 상황이라는 이야기가 자주 오르내린다. 정치, 경제, 사회가 엇박자를 이루며 쉴새 없이 흔들리고 있다. 좋은 리더십에 대한 정답은 없지만 희생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선한 리더가 요즈음 국내외의 불확실성이 높은 시기에 필요하지 않을까. 선한 리더의 등장이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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