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방관 10명중 1명은 우울증 - 스트레스 장애 발생비율 일반인의 10배 - 5만 필요한데, 현장엔 3만명뿐…소방인력 턱없이 부족 - 5년간 35명 자살…순직 33명보다 많아

[헤럴드 경제=서지혜 기자] “화재 진압 후 공기호흡기에 공기가 다 채워지지 않았는데, 바로 또 출동해야 하는 일도 많습니다. 화마와의 사투가 끝나고 돌아오는 것은 컵라면과 상처 뿐이죠”

53년째 끔찍한 화재 현장에서 국민의 안전을 지켜온 소방공무원들이 열악한 근무 환경에 신음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

인력부족으로 2교대만도 못한 3교대를 하고 있는 데다, 재난 현장에서 부상을 당했는데도 치료비조차 제대로 지원받지 못해, ‘영웅’이라는 칭호가 무색한 상황이다.

지난 8일 본지가 서울 일선 소방서에서 만난 소방관들은 대개 ‘인력 부족’으로 인한 업무과부하를 호소하고 있었다.

많은 소방관들은 인력부족으로 정시퇴근은 꿈도 못 꿀 뿐더러, 목숨을 건 현장에서까지 일손이 부족해 아찔한 경험을 해 봤다고 답했다.

현재 일선 소방서 진압 담당으로 일하는 김민호(가명)씨는 “구급차는 3명이 타도록 돼 있는데 운전원과 여성 구급대원 2명만 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응급환자가 엘레베이터 없는 4ㆍ5층 건물에서 여성 구급대원이 혼자 환자를 데리고 내려오는 일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심폐소생술 같은 경우는 체력소모가 큰데, 한 사람이 구급 현장에서 심폐소생을 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고 덧붙였다.

“3교대 근무 때문에 오히려 업무가 늘어났다”고 말하는 소방관도 많았다.

서울시는 지난 7월 72명의 신규 소방관을 은평소방서와 강북소방서에 각각 배치, 모든 소방서에서 3교대 근무가 시행된다고 밝혔다.

기존의 2교대 근무는 하루 24시간을 일한 후 맞교대 해 하루 휴식을 취하는 방식으로 주당 84시간을 일했지만, 3교대로 바뀌면서 주간과 야간, 비번 근무팀으로 나뉘어 주당 56근무를 할 수 있게 된 것.

하지만 인력이 충원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존의 소방관을 3교대 방식으로 나누다 보니 업무가 오히려 많아졌다.

서울의 한 소방서에서 만난 소방관 이명호(가명) 씨는 “올해같은 경우 메르스처럼 비상상황이 있었는데 해야 할 일이 많았는데 3교대로 바뀌면서 업무가 몇 배로 늘어났다”며 “내근직이 현장으로 차출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2014년 말 기준 소방관 기준인력은 5만493명이지만, 현장활동인력은 2만9783명으로 2만710명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방차에 타야 하는 기본 인원 등 기본적으로 충족돼야 하는 인력 수에 비해 41% 가량의 인력이 부족한 것. 2013년의 인력부족률 36.5%보다도 높아진 수치다.

전문가에 따르면, 이같은 인력부족은 최근 소방방재청이 국민안전처로 승격된 일과 무관치 않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화재는 매 해 늘어나고 생활안전이나 민원 수요도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데, 최근 소방방재청이 국민안전처로 바뀌면서 소방관의 행정ㆍ관리 업무도 분할되고 늘어났다”며 “충원 없이 조직이 비대해지니 10명이 하던 일을 6~7명이 나눠서 해야하고 전문분야가 아닌 일까지 도맡는 등 업무가 과부하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더욱 큰 문제는 열악한 환경 때문에 국민안전을 지켜야 하는 소방관의 안전이 위협받는 것.

안전행정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자살한 소방관의 수는 35명으로, 같은 시기 업무로 숨진 순직소방관(33명) 보다 많았다.

특히 소방관 10명 중 1명은 우울증을 겪고 있었으며 알코올 사용 장애나 수명장애 등 스트레스 장애가 발생하는 비율도 일반인보다 10배 이상 많았다.

상황이 이렇지만 스트레스 치료는 고사하고 공무수행 과정에서 입은 부상마저도 본인이 치료해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국회안전행정위원회 소속 박남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 9월 전국 소방공무원 627명으로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부상을 당한 적이 있는 소방관 120명 중 80%인 99명은 ‘절차복잡’ ‘행정평가상 불이익’ 등을 이유로 자비로 부상을 치료했다.

한 소방관은 “공상처리를 하려면 부상과 공무의 연관성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데 출동이 워낙 잦다보니 어떤 상황에서 다쳤는지 입증하기 힘들어 동료들 중 공상처리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윗사람 눈치가 보여 막상 입증을 해도 신청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