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에서 레이건에 대한 오마주는 여전한 모양이다. 지난 16일 개최된 미국의 공화당 대선후보 2차 토론회에서 각 후보들은 자신이 레이건을 계승하는 유일한 후보라고 주장했단다. 공화당이 레이건을 보수주의자들의 영웅으로 떠받드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신자유주의와 신도금시대를 연 레이거노믹스도 그들 동경의 대상이다. 공화당 대선 주자들 역시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그들이 도금정책을 동경한다면 그들은 자신들을 미국 자본주의의 신귀족으로 착각하거나 이미 귀족인 셈이다. 그들이 꿈꾸는 레이거노믹스라는 좋았던 시절은 지금에서 보면 그저 ‘당신들의 천국’일 뿐이다.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이 경제정책에서 내세우는 자유시장의 이념은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과 18세기 영국 시민계급의 자유주의적 계몽주의 이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에게 <금융자본론>으로 알려진 독일 바이마르공화국 시절 재무장관 루돌프 힐퍼딩은 영국의 자유시장 이념 탄생의 현실적 토대를 설득력 있게 지적하고 있다. 당시 영국의 시민계급 계몽주의자들은 왕과 정부의 간섭을 줄이는 것이 자신들이 자유롭게 경제적 이익을 취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믿었단 말이다. 이에 반해 유럽대륙의 계몽주의 시민계급은 절대왕권과의 협력을 통해 귀족의 힘을 약화시키고 통일된 시민사회를 형성하는 것이 그들의 이익에 더 부합했기에 자유방임주의 시장이념을 수용하지 않았다. 영국의 자유방임주의 이념은 19세기 영국 정부의 자유주의적 시장정책과 식민무역정책으로 수용된다. 영국이 19세기에 거대한 식민제국을 형성한 것도 이런 자유시장의 이념과 연결될 수 있다. 자유시장의 이념도 당대 영국의 현실적 이해관계의 산물이라는 말이다.
레이거노믹스 하면 떠오르는 미국의 경제학자는 밀턴 프리드먼이다. 1980년대 미국 신자유주의 경제이념의 대표적 통화주의 이론가. 레이건 정부의 경제정책은 그의 견해를 알리바이로 사용했고, 그는 레이건 정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주류 경제학자로 활동했다. 프리드먼과 그의 시카고학파는 지금도 여전히 미국의 주류 경제학으로 남아 있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을 지낸 것만으로도 한국의 주류 언론들이 존경해마지 않았던 벤 버냉키도 2002년 프리드먼의 90세 생일에 ‘당신의 말이 옳았다’고 인정했다. 이는 프리드먼의 완전한 승리처럼 보였지만, 어이없게도 몇 년 후 2008년에 미국 발 금융위기가 터졌다. 프리드먼의 키즈 대열에 합류한 버냉키는 2008년 당시 연준 의장이었다.
자유시장이론처럼 경제이론은 사실상 이념과 현실적 이해관계의 양 부모 밑에서 탄생한다. 경제이론의 이념과 논리를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그 이론에 담긴 현실적 이해관계를 간과해서도 안 되는 이유다. 서구의 계몽주의 이념이 이해타산에 따른 억압적 지배의 도구로서의 이성이라 가차 없이 비판한 20세기 초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시각으로 보면 현재 미국의 주류 경제학자들은 많은 경우 그 도구적 이성의 대표자들일지도 모른다. 진실은 그들의 주장이나 논리가 아니라 그들의 이론으로 경제적 이익이 사회의 어느 집단으로 갔는지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이념이나 레이거노믹스의 추종자들을 반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의 주류 경제학자들은 어떤가. 그들 역시 지금까지 프리드먼 내지 미국의 주류 경제학자들의 키즈나 아류였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제 한 나라의 경제정책이 나아갈 방향성도 여기에 있다. 경제정책은 경제이념만이 아니라 그 이념에 담긴 현실적 배경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특정 학자들이나 이론이 경제정책을 만들어 내서는 안 된다. 경제정책은 어느 경제학 교과서에 있고없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경제적 현실 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고 출발해야하며 그 정책의 효과가 현실의 경제적 폐해를 개선시켜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정책은 포기해야 한다. 우리 현 정부의 자유시장적 경제정책이 그렇게 실행되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