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해준 기자]지금으로부터 23년 전인 1992년 8월24일 중국의 영빈관인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한국과 중국의 수교문서가 정식 교환됐다. 그 동안의 적대관계를 청산한 한ㆍ중 수교는 양국 경제관계의 폭발적 확대의 신호탄이었다. ‘금단의 땅’이었던 중국이 ‘기회의 땅’으로 변했고, 기업들이 앞다투어 진출했다. 중국경제가 급성장하면서 한국의 대외경제지도도 바뀌었다.

하지만 그 이면엔 짙은 그늘이 자라고 있었다. 대중(對中) 수출비중이 25%를 넘을 정도로 의존도가 높다 보니 중국이 기침을 하면 한국은 독감에 걸리는 처지가 됐다. 이로 인해 최근 중국의 경기부진과 위안화 평가절하가 한국경제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은 여전히 기회의 땅이다. 패러다임 전환을 통한 새로운 접근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 경제지도를 바꾼 한ㆍ중 수교=수교 이후 양국은 상품 교역은 물론 투자, 금융ㆍ인적 교류 등에서 상전벽해(桑田碧海)를 겪었다. 특히 중국이 독일, 일본 등 경제대국을 차례로 제치고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면서 한국에겐 엄청난 기회였다.

수출과 수입을 합한 양국의 무역규모는 국교정상화가 이뤄진 1992년 64억달러에서 지난해 2354억달러로 무려 37배 급증했다.

대중 수출은 27억달러에서 1454억달러로 54배,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은 37억달러에서 901억달러로 24배 늘었다. 금융위기로 몸살을 앓았던 1998년과 2009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20~40%의 고속 성장을 지속했다. 23년간 연평균 수출증가율은 20%에 달했다.

특히 1997년말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한국기업들의 대중국 진출이 러시를 이루었다. 섬유를 비롯한 경공업에서 시작해 이제는 철강,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 전자, IT(정보기술) 등 한국의 주력산업이 중국에 제2의 생산기지를 구축했다.

한국이 1970~80년대 일본과 미국 시장을 바탕으로 후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면, 1992년 수교 이후 중국을 등에 업고 신흥국에서 선진국 진입의 문턱까지 치고올라갈 수 있었다. 중국이 없었다면 지금의 한국경제도 불가능했던 셈이다.

▶중대한 전환점에 선 양국 경제관계=하지만 최근 중국이 고속성장의 후유증을 겪기 시작하면서 한국에 강한 후폭풍을 몰고 오고 있다. 지난 11일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로 한국 주가와 원화가치가 폭락한 것이 이를 입증한다. 높은 대중 의존도가 문제다.

한국의 대중 수출의존도는 1992년 3.5%에서 지난해 25.4%로 급증했다. 수출의 4분의1을 중국에 의존하는 셈이다. 이는 대미 수출의존도 12.3%의 2배를 넘으며, 대일 의존도(5.6%)의 5배에 육박하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의 9.0%보다도 3배 정도 높다.

무역수지 흑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지난해 대중 무역흑자는 552억달러로 전체 무역흑자 471억달러보다 80억달러 정도 많았다. 대미 무역흑자가 9억달러, 대일 무역에서 215억달러 적자, 대EU 무역에서 107억달러 적자를 낸 것과 비교된다.

중국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많은 연구에서 입증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분석에 따르면 중국 성장률이 1%포인트 낮아질 경우 한국의 성장률이 0.17%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분석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원/위안화 환율이 5% 하락할 경우 한국 수출이 3%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고, 국제투자은행(IB)들은 중국의 경기위축으로 한국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평가했다.

▶패러다임 전환으로 새로운 기회 창출해야=한ㆍ중 경제관계는 중대한 전환점에 접어들었다. 중국이 고속성장기에서 완만한 성장기로 접어들고, 중국기업들의 기술력과 부품자급률이 높아져 중간재 수출전략으로는 더 이상 우리의 파이를 늘릴 수 없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성장률이 7%대에서 6%대로 둔화되면서 글로벌 경제에 충격을 주고 있지만, 아직 잠재력이 풍부한 시장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시적인 부침은 있겠지만, 한국이 놓칠 수도 없고 놓쳐서도 안되는 중요한 시장이라는 얘기다.

중국의 경제규모가 이미 10조달러를 넘어 일본을 두배 격차로 따돌렸고, 10년 이내엔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중국과 어떠한 경제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한국경제의 한단계 성장 여부도 판가름날 수 있다.

추원서 경기대 교수는 “이제는 중국이라는 호랑이의 등에 올라타는 전략을 써야 한다”면서 “일희일비하지 말고 중국의 정책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맞춤형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추 교수는 “중국이 수출ㆍ투자에서 내수 중심으로, 제조에서 서비스 중심으로 성장전략을 바꾸고 있다”면서 “우리도 서비스, 유통, 금융 등에서 새로운 시장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재진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단기적으로는 중국발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등 협력채널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중장기적으로는 혁신형 고부가기술 제품과 서비스 등 신시장 개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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