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왕 전통적 정치적 참여 불가 여론 통해 정치적 간여는 가능 아베, 패전 70년 담화 ‘사과’ 언급 아키히토 일왕 의식한 발언 메이지 일왕, 이토 히로부미와 막역 이토 장례식도 국장으로 치러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패전 70년을 맞아 던진 메세지는 강렬했다. 사상 처음으로 ‘반성’을 추도문에 담았다. 반면 하루 전 아베신조(安倍晋三) 총리는 담화에서 주어를 생략한 채 ‘반성’과 ‘사죄’를 마지못해 읊었다. 일왕과 일본 총리의 다른 인식이다.
일왕은 전통적으로 정치적 참여가 어렵다. 일왕의 전제군주권이 보장된 메이지 시대에도 유신을 이끈 이른바 ‘원훈’들이 실권을 가졌다. 일왕은 권력행위는 내각총리대신이 결정한 각료 등에 임명장을 부여하는 게 고작이었다.
아키히토 일왕이 아베 총리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정책에 간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원폭 피해지역 방문과 전범 피해 사과 등의 행보를 통해 간접적으로 여론을 움직일 수는 있다.
아베 총리가 패전 70주년 담화를 15일이 아닌 14일 발표한 것도 왕실과 내각의 미묘한 갈등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자민당 관계자는 주간 포스트(週刊ポスト)와의 인터뷰에서 “같은 날 담화를 발표하게 되면 같은 날 일왕과 총리가 다른 입장을 내놓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고 설명했다.
아베 총리가 담화에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한 문구를 그나마 반영되고 이에 대한 ‘사과’를 거론한 것도 일왕의 담화 내용을 염두한 조치였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일왕이 동창이기도 한 하시모토 아키라(橋本 明) 전 교도통신 기자도 주간 포스트(週刊ポスト)를 통해 “아베가 국제정세 변화를 이유로 헌법 해석을 바꿔 미국 의회 연설에서 공약한 안보법제를 무리하게 성립시키려고 하고 있다”며 “일왕과 왕후는 아베 정권에 ‘대항’하는 ‘말씀’을 별도로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었다.
사실 지난 5월에도 아키히토 일왕이 전후 평화메세지에 아베 총리의 역사 인식과 대치되는 발언을 담을 예정이란 얘기가 나왔었다. 이때, 아베 총리의 자문역으로 알려진 헌법 학자 야기히데 쓰구(八木秀次)는 언론 칼럼에서 “국민들은 왕실의 발언을 통해 아베 내각이 추진하고 있는 법안에 문제가 있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며 “도대체 궁내청 관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며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하지만 일왕이 역대 내각과 모두 불편했던 것은 아니다. 아키히토 일왕과 아베의 경우에는 정치적 배경부터가 다르다.
조슈번 정치가문에서 태어난 아베는 일본의 ‘보통국가화’가 자신의 임무라고 여긴다. 반면 1933년 생인 아키히토 일왕은 어린시절 직접 전쟁을 겪음으로써 ‘평화’의 가치를 체험했다.
사이토 토시히코 가쿠슈인(學習院)대학 교수는 ‘아키히토 일왕(천황)과 평화주의’라는 책에서 “아키히토 일왕은 압도적인 전쟁 체험이 있다. 종전 당시 피난처에서 일부세력은 아키히토 일왕(당시 왕세자)에게 항전을 요구하기도 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키히토 일왕에 앞선 메이지일왕과 히로히토 일왕 등은 내각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정치적 영향력도 발휘했다.
메이지(明治) 일왕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총리와 막역했다. 이토는 천황제를 중심으로 한 일본 근대군주제를 구축의 주역이다. 메이지 일왕은 이토의 여성화를 보고 비웃는가하면, 이토의 여성편력에 대해 “자제 좀 하라”며 농담할 정도였다고 전한다. 메이지 일왕은 이토가 죽었을 때도 “가장 마음 맞는 사람이 떠났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이지 일왕은 이토의 장례식을 국장(國葬)으로 치렀다.
히로히토 일왕의 기록을 엮은 ‘쇼와실록’을 보면 그는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했었다. 대만이 유엔의 대표권을 상실할 위기에 놓였을 당시, “중국을 지지하라”며 일본 정부에 요구했다. 만주사변을 일으킨 내각의 결정에도 극구 반대했었다.
히로히토 일왕은 총리들에 대한 호불호도 분명했다. 시종장이었던 일본제국 마지막 총리 스즈키 간타로(鈴木 貫太)를 아꼈지만, 만주사변의 주역이었던 다나카 기이치(田中 義一 ) 총리는 싫어했다고 한다. 해군 출신인 스즈키 간타로는 연합국과 종전협상을 하는 중책을 맡았었다.
다민 히로히토 일왕도 패전 후 민주선거가 실시된 이후에는 국민의 뜻을 존중, 내각총리대신에 대한 호불호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문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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