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일본 대기업 미쓰비시(三菱)머티리얼의 선별적 사과ㆍ배상 행보가 가속화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 회사에 강제징용 돼 노역을 한 피해자에 대한 사과ㆍ배상 대상에 한국만 쏙 빼놓은 것이다.
미쓰비시 측이 이 같은 행동을 보이는 데는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관련 문제가 해결됐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면서도 역사문제가 해외사업 전개에 주는 영향을 고려해 각 나라별로 다른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24일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에 따르면 미쓰비시머티리얼은 과거 강제연행돼 노동한 중국인 3765명에 대해 ‘사용자로서의 역사적 책임’을 인정했다.
미쓰비시 측은 사과와 애도의 뜻을 표하고, 성의있는 사죄의 증거로 1인당 200만엔(한화 약 187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외에도 관련 기념물의 건설ㆍ조사비로 3억엔(약 28억원), 노동자와 유가족을 위한 위령추모행사를 진행하는 비용으로 1인당 25만엔(약 235만원)을 지급한다.
이 같은 결정은 강제노역에 동원된 중국인 노동자들이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자국 법원에 제기한 소송과정에서 나왔다. 일본 대기업이 중국인 강제노역 피해자에게 사과와 배상을 함께하기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미쓰비시 측은 같은 이유로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소송과 관련, 사과나 배상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머티리얼의 계열사인 미쓰비시중공업은 지난 1999년부터 한국인 강제 동원 피해자와 소송을 진행 중이다. 한국 법원에서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자 지난 13일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했다. 이는 타협은 없다는 미쓰비시 측의 의지가 드러난 부분이다.
또 미쓰비시머티리얼의 사외이사 오카모토 유키오(岡本行夫)는 최근 “한국에 대해서는 법적 상황이 다르다”며 사과ㆍ배상 대상에 한국인이 배제됐음을 시사했다. 이 자리에서 그가 미국인 피해자들에 이어 영국과 네덜란드, 호주의 전쟁포로에게도 사과하고 싶다는 의향을 밝힌 것은 한국인 피해자들에 대한 소외를 더욱 부각시켰다.
미쓰비시 측이 이 같이 행동하는 데는 1965년 한ㆍ일협정으로 개인에 대한 배상책임은 소멸됐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쓰비시중공업은 한국인 피해자와의 소송에서 이 같은 이유로 배상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공식화한 바 있다.
또 일본 정부도 자국 기업들에게 한국인 배상 문제와 관련, 한ㆍ일협정의 내용을 준수하라고 나름의 압박을 넣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례로 일본 기업 신일철주금은 지난 2013년 강제 노역한 한국인 피해자와 소송을 벌이는 과정에서 “배상문제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따르겠다”고 밝혔다. 이에 일본 정부는 “개별기업은 나서지 마라”고 대응했다.
이와 동시에 한국인에게 사과와 배상을 하지 않는 것 자체가 미쓰비시의 경영적 전략일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미쓰비시 측은 역사문제가 세계 각국의 사업에 주는 영향을 고려해 각각 다른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사과를, 중국은 사과와 보상을 얻어간 셈이라고 한 외교소식통은 전했다.
이 소식통은 “일본 정부는 중국과의 전쟁 배상 문제에 대해서도 지난 1972년 중일공동성명으로 끝났다는 입장이었다”며 “그럼에도 중국인 피해자들에게 배상하겠다고 한 것은 미쓰비시 내부의 경영적 판단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그는 “만약 그런 이유로 중국에는 전례 없는 조치를 내리고, 한국에는 아무런 사과나 보상을 언급하지 않는 것이라면 이는 씁쓸한 현실의 단면이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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