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일본의 산업시설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고도 ‘강제징용’ 인정 문제에 휘말린데 이어 독도문제, 일본산 수산물 금수 조치, 아베담화의 사죄 문제 등이 이어지고 있다.
잇따른 악재로 한ㆍ일관계가 안정화 국면으로 들어설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가운데, 연내 개최될 것으로 예상됐던 한ㆍ일정상회담마저 불투명해졌다는 지적도 외교가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22일 니혼게이자이(日經) 신문에 따르면 아베 신조(安倍 晋三) 내각은 다음 달 발표할 종전 70주년 담화에서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한 ‘사죄’나 ‘사과’라는 표현 대신, ‘반성’을 표명할 예정이다. 신문은 아베 총리 측근의 말을 인용해 “총리는 사죄나 사과를 총리로서가 아닌, 개인적으로 표명할 방침을 고민하고 있다”며 “한국과 중국이 이를 외교상 ‘역사카드’로 사용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일본 총리가 발표하는 담화는 일본이 가진 역사인식의 잣대가 된다는 점에서 한ㆍ일정상회담의 최대 전제조건 등으로 거론됐다. 특히 한국은 과거사 문제와 관련, 담화에 담길 반성과 사죄의 내용과 그 수준에 주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베 총리가 담화에서 아예 사과와 사죄를 배제할 것이라는 측근의 발언은 한ㆍ일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나 다름없다.
일본 방위성이 지난 21일 국무회의에 보고한 ‘2015년 방위백서’도 한일관계 개선을 주춤하게 만들었다. 이 방위백서에는 ‘일본의 고유영토인 북방영토나 독도의 영유권 문제가 여전히 미해결된 상태로 남아있다’는 표현이 담겼다. 이는 곧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는 것으로, 일본은 이 같은 주장을 올해로 11년째 이어가고 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독도에 대한 허황된 주장을 포함시킨 것은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 역사를 부정하는 행위”라고 반발했다. 국방부는 “현재로선 일본과는 정보보호협정이나 군수지원협정을 위한 어떤 논의도 없다”고 밝히며 일본의 방위백서에 강력히 항의했다. 정부는 이날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와 주한 일본 국방무관을 초치해 항의문을 전달하며 한ㆍ일관계의 난항을 예고했다.
한국과 일본은 같은 날 수산물 수입규제 조치를 놓고도 한 판을 벌였다. 한국은 지난 2011년 후쿠시마(福島) 원전사고 이후 방사능 오염 가능성이 있는 일본 8개 현에서 나오는 수산물의 수입을 금지했다. 이와 관련 일본 정부는 이날 해당 문제를 세계무역기구(WTO)의 강제해결 절차에 따라 해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ㆍ일이 WTO 협정에 근거한 양자협의를 가졌음에도 협의 기간 내 이견을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원전사고 4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산 식품에 대한 국내 소비자의 불안감은 큰 반면, 일본은 한국이 수입을 재개해야 한다고 밀어 붙이며 치열한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이는 일본 정부가 수산물 금수 문제를 양국간 무역협상의 정식 의제로 올려 한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려는 시도로 해석되면서 한ㆍ일관계의 또 다른 뇌관으로 거론된다.
이런 상황에서 올 가을 예상된 한ㆍ일정상회담의 성사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는 관측도 외교가 안팎에서 나온다. 한 외교 소식통은 “한ㆍ일정상회담은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그 전부터 우호적인 분위기가 계속 조성되고 그 흐름에 맞춰 양국이 뜻을 모았을 때 개최되는 것“이라며 ”세계문화유산 강제징용 인정문제서부터 계속해 악재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양국 정상회담 조기 성사는 물론 연내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도 희박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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