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물 흐르듯’이 아닌 ‘화살 나는 속도’로 지나갔네요”2년의 임기 중 100일이 지났다. 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은 취임 100일을 맞은 소회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러면서도 “‘정말 열심히 해보자’란 생각에 눈코 뜰새없이 지내고 있는데 최근엔 ‘아 계속 이렇게 바쁘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든다(웃음)”며 여유도 잊지 않는다.
▶“김용환 하면 떠오를 농협 내 족적 남길 것”=업계에서는 김용환 하면 따라오는 업적이 있다. 몸 담은 곳마다 족적 한 개씩은 남긴 그다. 김 회장은 과거 금융감독위원회 국장 시절 18년만에 생명보험사 상장 결정을 이끌었고 수출입은행장 시절엔 은행 출범 36년만에 수출입은행법을 개정해 수출입은행에 지분투자의 길을 터줬다. 김 회장은 농협에서도 주저함이 없었다. 김 회장은 “농협에서도 김용환이란 족적을 남기고 싶다”고 했다. 두 가지를 내걸었다. 글로벌화와 IT 경쟁력 강화다. 농협금융이 업계에서 가장 뒤쳐졌다고 평가받는 분야들이다. 경쟁우위 보다 ‘경쟁열위’에 목표를 내건 셈이다. “한다면 한다”는 고집스런 성격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집무실 한 쪽 벽면을 채운 세계지도가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김 회장은 “과거를 쭉 떠올려보면 가지 않았던 길이라,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단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였기에 밀어붙였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일단 ‘수동적이고 고루하다’는 농협 이미지는 바뀌고 있지 않나요”라며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자신감 위에 여유가 묻어나고 있었다. ▶내 경험과 농협 강점 만나면 ‘글로벌 농협’ 머지 않아=“글로벌만이 살길입니다. 근데 남들 나가는 방식으론 나가지 않을 겁니다. 농협만의 경쟁력을 적극 살릴거예요. 농협하면 떠오르는 그 것(?)으로 말이죠. 사무소에서 지점으로, 또 지점에서 법인으로 키워가는 식의 진출방식도 거부합니다. 보다 과감하게, 보다 직접적으로 나설겁니다. 일단 목표는 미얀마를 시작으로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와 중국입니다”
농협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농업’ ‘농산물’ ‘농기계’…. 금융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이것들과 금융의 글로벌화를 엮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김 회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금융외교’로까지 지평을 넓히고 있었다.
김 회장은 “농협경제 등 계열사와 KOICA(한국국제협력단)등 해외원조관련 기관들과 협력해 동남아 국가 농촌지역에 농기계, 비료 등을 지원하고 여기에 소매금융을 연계시켜 발을 넓힐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에서 조차 낯설어 하던 ‘금융외교’는 하지만 결실도 맺고 있다. 김 회장은 지난달 미얀마 대통령을 직접 만나 담판을 지었다. 미얀마 정부가 추진 중인 새마을운동 시범마을단지 100곳에 농협금융이 소액대출ㆍ보험 등 금융서비스를 제공키로 한 것이다. 김 회장은 “소액대출로 시작해 보험상품 등으로 확대할 것”이라며 “현지 은행에 대한 인수합병(M&A) 또는 지분투자 등 공격적인 방식도 겸할 것”이라고 했다.
그가 취임하자마자 글로벌화에 ‘전념’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전력도 한 몫했다. 재무부 출신(행시 23회)인 김 회장은 재직 시절 ‘국제금융통’으로 불렸다. 미국 증권관리위원회에 3년간 파견 근무하며 글로벌 감각을 익힌 그는 금융위원회 전신인 금융감독위원회에서 감독정책2국장을 지냈고 금융위, 금감원이 쪼개진 시절엔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을 지내는 등 주로 금융 분야에서 관료생활을 했다. 2011년부턴 수출입은행장을 지내면서 국제금융의 실무 감각까지 익혔다.
▶핀테크 선두주자는 농협금융=김 회장은 동시에 IT부문 강화에도 집중하고 있다. 핀테크 업체와의 협력은 여느 시중은행을 압도하고 있다. 농협은행은 지난달 선제적으로 자체 금융API(Application Program Interface)를 외부에 공개키로 했다. 금융API는 인터넷뱅킹, 계좌이체, 거래내역 조회 등 기능을 담은 일종의 프로그램 설계도다.
김 회장은 “그동안은 외부에 API를 공개한 은행이 없어서 핀테크 업체들이 프로그램 개발에 애를 먹었다”면서 “이번 공개로 핀테크 업체들은 기술개발이 용이해지고 우리는 그들과 기술개발 협력을 할수 있어 상부상조다. 진정한 의미의 핀테크“라고 자평했다.
이어 그는 “궁극적으로 인터넷, IP, 모바일, 오픈 플랫폼 등을 총괄적으로 활용할수 있는 영업 전략을 세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년 1월엔 경기도 의왕시에 NH통합IT센터도 완공된다.
▶“찾으면 돈 나올 구멍 많다”=악화되는 국내 금융시장의 수익성은 김 회장에게도 고민이다. 하지만 김 회장은 해답도 찾았다. 비이자수익을 강화해 수익성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NH투자증권을 통한 자산운용 분야를, NH농협생명을 통한 연금 및 보장성보험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구상도 이미 마쳤다.
김 회장은 “다른 지주사의 경우 은행 비중이 90% 이상인데 농협금융은 60%에 불과해 운신의 폭이 넓다”며 자신감도 내비쳤다. 제대로 하기 위해 우수인력이 바탕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 최근 외부에서 자산운용 전문가 15명을 채용하기도 했다.
공격적인 투자계획도 세웠다. 과거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과 수출입은행장 경험이 ‘소스’가 됐다. 그는 은행과 증권의 사모펀드투자(PEF)를 합쳐 보다 판이 큰 투자에 나선다. M&A와 해외발전소 등에 대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시장에도 공격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경상수지가 높다고 체질(국제수지)이 튼튼한 게 아닙니다. 단순히 물건 수출만은론 어려워요. 자본수지가 높아야 합니다. 해외 거점 지역에 투ㆍ융자를 강화해 수수료, 배당수익을 늘리는 게 자본수지를 높이는 방법입니다. 농협금융도 이런 방향으로 수익성을 극대화 할 겁니다”
▶나는 손녀바보…자산관리는 부인 몫=경영계획을 풀어 놓던 그도 세상을 다 가진 듯 할아버지 미소를 지어보이기 시작했다. 손주 얘기를 할 때였다. 1남 1녀를 둔 김 회장은 장녀가 결혼해 현재 외손주만 두 명(남아 1명, 여아 1명)을 두고 있다.
그는 ‘손녀바보’(?)였다. 김 회장은 “너무 예쁩니다. 특히 손자보다 손녀가 정말…”이라며 연신 미소를 지었다. 그는 “너무 예뻐서 계속 같이 있고 싶은데 친구들이 그러면 몸이 상해서 안된다고 하더라”면서 “어쩔 수 없이 금요일 오후에 데려와서 토요일 오후에 보낸다”며 아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400조원이 넘는 자산을 주무르는 그도 집안 자산관리는 아내에게 모두 맡긴다고 했다.
김 회장은 “지난주에 부모님이 계시는 충남 대천, 무창포 해수욕장 일대로 휴가를 다녀왔는데 참 좋더라. 국내에 참 좋은 곳이 많다”면서 “어버님이 올해 93세신데 매우 정정하시다. 나는 아직도 꼼짝도 못한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김 회장이 평소 좋아하는 글귀는 도덕경에 나오는 ‘유수부쟁선(流水不爭先)’이다. 흐르는 물은 앞을 다투지 않는 것처럼 일희일비하지 않고 긴 호흡으로 묵묵히 최선을 다하면 각자의 노력에 합당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란 뜻이다. 남은 임기는 1년 9개월여. 짧은 ‘골든타임’ 안에 김 회장이 얼마나 제 실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지 세간의 시선이 쏠려 있다.
황혜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