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 만에 종이통장이 사라진다고 한다. 인터넷ㆍ모바일뱅킹 확산으로 통장 필요성이 크게 줄었다고 판단해서다. 인건비 등을 더하면 1개에 5000~1만8000원의 비용이 필요하다니, 종이통장은 마땅히 퇴출(?) 되야할 존재로 보인다. 더군다나 대포통장 등 금융범죄에도 악용된다고 하지 않는가.
한데 이상하게도 여론의 반응은 싸늘하다. 시대가 변했으니 당연히 사이버금융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긍정적 의견은 극소수다. 오히려 금융소비자의 권리는 안중에도 없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훨씬 높다.
“만약 은행 전산망이 해킹 돼 모든 자료가 사라진다면?” 이라는 관점에서 사람들의 불안감은 증폭되고 있다. 일부 누리꾼은 “해킹 천재가 널렸는데 만약 해킹 당하면 내 돈을 증명할 방법이 사라질 것”이라며 “그냥 강철로 만든 금고를 알아봐야 겠다”며 불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더군다나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못하는 노인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노인 인구는 이미 600만명을 넘어 전체 인구의 13%에 달한다. 이들 13%의 금융소비자는 돈이 제대로 입금됐는지 볼 때마다 젊은 사람한테 의지해야 할지도 모른다.
소위 ‘엄지족’이라 불리는 젊은세대도 “종이통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앱통장을 발급 받은 후 실물통장을 따로 신청하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다고 하니 단순한 엄살도 아닌 듯 싶다. 눈에 보이거나 손에 쥐어지는 게 없으면 불안감과 허전함을 느끼는 것은 사이버세대도 어쩔 수 없나 보다.
금융당국이 종이통장 퇴출을 주장하는 데는 해외사례도 한 몫했지만 이것도 석연치 않다. 계좌관리 수수료가 따로 부과되는 외국에선 종이통장 대신 매달 ‘거래 계좌내역’을 메일로 혹은 레터형식으로 보내준다. ‘거래 계좌내역’이 일종의 종이통장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괴리를 해결할 방안을 따로 생각해뒀는지, 편리함이 능사가 아니라는 금융소비자들의 현실적인 수요는 반영했는지, ‘시기상조’라는 말이 왜 나오고 있는지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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