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한 풍경을 간직한 민통선 속의 섬전기 대신 기름으로 모터돌린 정미소 등녹슬고 낡은 시설 이제는 귀한 대접향교·읍성 등 돌다보면 저절로 힐링
청정한 풍경을 간직한 민통선 속의 섬 전기 대신 기름으로 모터돌린 정미소 등 녹슬고 낡은 시설 이제는 귀한 대접 향교·읍성 등 돌다보면 저절로 힐링
교동대교 개통·야간통행제한 완화 관광객들의 편의도 높아져 각광
불과 한달 전만해도 교동도를 찾는 관광객들은 해가 진 후 섬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했다. 지난해 강화도와 교동도를 잇는 교동대교가 개통되기 전에는 배를 타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민간인통제구역인 교동도는 오랜 시간 고립됐던 만큼 문명의 침범이 덜한 평온한 섬이다. 고립은 불편을 낳고 발전을 더디게 했지만 때묻지 않은 청정한 풍경을 간직하게 했다. 미처 수리하지 못한 낡고 오래된 건물이나 시설들은 초고층 건물이나 첨단 시설보다 오히려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굳이 코스를 짜느라 고심하지 않아도 섬 한바퀴를 차분히 돌다보면 저절로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두시간 안에 닿을 수 있는 교동도는 하루 나들이 코스로 제격이다.
▶화개산 나들길…北 연백땅이 눈앞에=강화군은 지난 8일 교동도를 찾는 외래 방문객의 통행 시간을 새벽 4시부터 밤 12시로 연장했다. 이전에는 일출 전 30분부터 일몰 후 30분까지만 교동대교를 이용할 수 있었다. 교동도는 지난해 7월에야 교동대교(3.44㎞)가 완공돼 육지와 연결됐다.
교동도는 강화도와 석모도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우리나라에서 14번째로 큰 섬이다. 교동도에서 가장 높은 산인 화개산에 오르면 교동도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화개산은 해발 259.6m에 불과한 야트막한 산이지만 경사가 제법 가파르다.
산 정상에 오르면 북쪽으로 황해도 연백군이 보인다. 교동도 끄트머리에서 넓이 3.2㎞에 불과한 바다를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이 갈라져있다. 남북이 분단되기 전에는 교동도 주민들이 참외나 감을 싣고 연백으로 건너가 쌀과 바꿔왔다고 한다.
개화산 정상에서 방향을 틀어 남쪽 바다를 바라보면 강화도, 석모도, 주문도 등 섬들이 펼쳐져 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섬들은 남해안 다도해 못지않게 아름답다. 화개산 등산로 입구에서는 현재 찜질방의 원조인 한증막을 볼 수 있다. 돌무덤처럼 생긴 이 한증막은 조선 후기부터 사용됐다. 마른 소나무 가지를 태워 남은 재를 바닥에 깔고 그 위 올라앉아 땀을 내는 방식이다.
▶대룡시장…시간이 멈춘 장소=화개산 아래 위치한 대룡리는 교동도의 신시가지다. 카페도 있고 편의점도 있다. 하지만 좁은 골목을 따라 대룡시장에 들어서면 1960~70년대에서 시간이 멈춘 듯하다.
대룡시장에는 녹슨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낡은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결혼예복 전문’, ‘옛날 쌍화차 있읍니다’라고 적혀있는 양복점과 다방, 고철이 가득 쌓여있는 영운모타 등을 보고 있으면 드라마 세트장에 와있는 듯하다.
이중에서도 동산약방과 교동이발소는 5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문이 활짝 열려있는 동산약방에 들어가자 ‘조혈ㆍ영양발육촉진 몰트헤모구로빈’이라고 적힌 유리 찬장이 눈에 들어온다. 동산약방 주인인 나의환(84) 할아버지는 관광객이 모여들자 호국영웅기장증과 메달을 자랑스럽게 꺼내보인다. 나 할아버지는 6ㆍ25전쟁 국가유공자로 55년째 이곳에서 약방을 운영하고 있다.
교동이발소의 지광식(77) 할아버지도 골목으로 나와 관광객들을 상대로 옛날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옛날에는 점심도 못 먹고 일할 정도로 손님이 많았어. 그때는 머리를 깎아야 명절을 쇠는 줄 알았으니까 명절 때는 밤을 새기도 했지. 포마드를 발라주면 손님들이 아깝다고 한동안 머리를 안 감아서 떡진 채로 다녔어”
지광식 할아버지의 고향은 연백이다. 전쟁 때 피난을 왔다가 교동도에 눌러살게 됐다.
“오년전만 해도 해변에 가면 연백에 있는 고향집이 보였어. 어느날 고향집이 안 보이길래 답답해하니까 애들이 쌍안경을 사다주더라고. 보니까 집을 다 헐고 큰 창고를 지어놨어. 서운했지. 집터라도 보고 있으면 좋았는데…”
대룡시장에서 북쪽에 위치한 교동정미소도 40년 전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교동정미소는 전기 대신 기름으로 모터를 돌려 벼를 찧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이곳 안주인은 구수한 말솜씨로 교동마님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돈이 없으니까 기계를 바꾸지 못하고 옛날 방식 그대로 하고 있는거야. 그래서 귀한 거라고 방송국에서도 찾아오고 경상도, 전라도에서 쌀 보내달라고 전화가 와. 교동은 공기가 맑고 땅이 깨끗해서 쌀이 맛있지”
▶교동읍성…운치있는 시골길=교동도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향교인 교동 향교가 있다. 고려 인종 5년(1127)에 유학자 안향이 중국에서 공자의 초상화를 가져와 이곳에 모셨다. 이순신의 5대손인 이봉상이 교동부사로 왔을 때 글자를 새겼다는 노룡암도 교동향교 내에 자리잡고 있다.
전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명인 교동(校洞)은 보통 향교가 있는 곳이다. 하지만 교동도의 한자는 학교 교(校)가 아니라 높을 ‘교(喬)’에 오동나무 ‘동(桐)’자다. 예전에 교동도는 오동나무섬으로 불렸다.
교동향교에서 나와 도로를 건너면 커다란 오동나무가 하나 보인다. 오동나무 옆에 작은 사당이 하나 있는데 연산군을 모신 ‘부군당’이다. 연산군은 중종반정 이후 교동도에서 귀향살이를 하다 3개월만에 세상을 떠났다.
부군당을 지나 시골길을 걷다보면 교동읍성이 나온다. 둘레 430m, 성문이 3개인 읍성이었지만 현재 남문 하나만 남았다. 무지개 모양의 성문 위에 있던 누각은 사라져 마치 폐허처럼 쓸쓸한 모습이다. 하지만 살구나무, 오디나무가 늘어서 운치있는 시골길을 걷다보면 씁쓸함은 어느새 사라진다.
교동도=글ㆍ사진 신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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