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산정에 화구호 가진 생태자원 보고2006년 람사르습지로 등록된 보호구역물장군·맹꽁이…다양한 식물 군락 형성음메~입구선 제일먼저 반겨주는 소떼들‘물보라길’ 걸으면 왕복 1시간반 가뿐가파른 계단길로 정상까지 1시간 코스
제주 산정에 화구호 가진 생태자원 보고 2006년 람사르습지로 등록된 보호구역 물장군·맹꽁이…다양한 식물 군락 형성
음메~입구선 제일먼저 반겨주는 소떼들 ‘물보라길’ 걸으면 왕복 1시간반 가뿐 가파른 계단길로 정상까지 1시간 코스
알 만한 초보 운전자들은 다 안다. 제주도에서 운전대를 잡았을 때의 기분. 한적한 해안도로를 달리며 뭔가 사람 구실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그 기분.
느릿느릿 달려도 쫓는 사람 없고, 길을 잘못 들면 쉬어 가면 그만인 곳, 제주를 1년 반만에 다시 찾았다. 그 해 겨울 ‘장롱면허’를 소지한 초보 운전자는 렌터카를 몰고 제주 3박 4일 여행에 나섰더랬다. 미등 켜는 법조차 헤매던 때였다.
이번엔 조금 달랐다. 액셀과 브레이크 정도는 차분하게 구분했고, 사이드 브레이크는 반드시 내려놓고 달릴 줄도 알았다. 대책없는 초보 운전자에게 그랬듯, 제주의 도로는 여전히 너그러웠다. 무엇보다도 쫓는 이 없었고 쉬어 갈 곳 많았다.
1118 지방도(제주시 조천~서귀포시 남원), 남조로를 느릿느릿 달렸다. 모터로 움직이는 네발 달린 짐승은 인적 드문 ‘물영아리오름(해발 508m)’으로 발길을 이끌었다.
▶음머~ 어서 와, 물영아리오름은 처음이지?=물영아리오름이 있는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는 주민이 채 400명이 안되는 작은 마을이다. 지난 2012년 오름 둘레길을 만들면서 마을 명칭인 ‘수망(水望)’의 한자를 풀어 ‘물보라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물영아리 오름은 크게 두 갈래 길로 탐방이 가능한데, 하나는 오름을 둘러싸고 난 물보라길을 걷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오름 정상의 습지까지 가파른 계단으로 곧장 오르는 것이다. 물보라길은 1시간 반, 정상까지는 왕복 1시간 정도가 걸린다.
말(馬) 많은 제주에서 가장 먼저 만난 것은 소(牛)떼였다. 물영아리오름 입구에는 소목장이 있다. 수망리 주민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목장이다. 30여년전 공동 조림 사업으로 삼나무 숲을 조성해놨다. 울창한 삼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드넓은 목장은 소떼들의 낙원이다. 펜스로 둘러쳐진 이 낙원은 공식적으로는 ‘일반인 출입 금지구역’이다. 철문 옆에 쌓아놓은 통나무를 밟고 금인(禁人) 구역으로 발을 내딛었다.
목장 가운데에는 아스팔트 길이 좁게 나 있다. ‘소똥밭’이다. 아스팔트 너머에서 이동중이던 한 무리의 소떼들이 월담한 불청객을 흘깃 바라봤다. 그리고 이내 가려던 방향을 틀어 다가오기 시작했다. 태어난지 얼마 안 돼 보이는 송아지 한 마리가 제일 빠른 걸음이다. 불청객 쫓아내러 오는 것이겠느냐며 태연한 척 서 있었지만 5분도 채 버티지 못했다. 후다닥 오름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생명이 꿈틀대는 람사르습지=‘물영(水靈)’. 물을 관장하는 신령이 깃들었다는 뜻. 이름처럼 오름 정상 분화구에는 물이 고여 있는데, 2000년 12월 ‘습지보전법’에 의해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화구호(火口湖ㆍ화산 분화구에 물이 괸 호수)인 물영아리오름 습지(둘레 300mㆍ깊이 40m)는 제주의 대표적인 ‘람사르(Ramsarㆍ국제습지보호협약) 습지’이기도 하다. 기생 화산구 원형 그대로의 모습에 온대 산지 습지의 생태를 간직하고 있어 생물, 지형ㆍ지질 연구 가치가 높은 것으로 인정받아 지난 2006년 람사르 습지에 등록됐다.
제주에는 5곳의 람사르 습지가 있다. 그 중에서도 물영아리오름 습지는 습지 생태계의 물질 순환을 연구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꼽히는 곳이다. 분화구 내 습지의 육지화 과정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도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다.
오름 입구는 목장 옆 길을 에둘러 간다. 수백여 마리의 소들이 풀 뜯는 광경에 한참을 더 마음을 뺏기며 걷다보면 오름 정상의 습지로 가는 계단이 나온다. 입구에서 근무 중인 오름지기의 말로는 계단이 800개 정도 된다고.
숫자를 세어보려는 노력은 얼마 가지 않았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다 못해 호흡 곤란(?) 상태에 빠질 것 같은 위기감이 들었다. 저질 체력 탓만 하기에 계단이 너무 많고 가파르다. 얼굴은 땀 범벅이 됐다.
게다가 숲이 울창해 사방이 어둑했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질 때쯤 서서히 시야가 밝아 왔다. 정상에 도착한 것. 내려가는 계단 몇 개를 지나자 오름 분화구 습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습지에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인 물장군, 맹꽁이가 살고 있다. 또 습지 경계부부터 안쪽으로 서로 다른 식물 군락들이 띠를 형성하고 있다. 경계부에는 복분자딸기와 좀찔레 군락이, 그 안쪽에는 고마리 군락이, 더 안쪽에는 풀고추나무 군락과 송이고랭이 군락이 형성돼 있는 모습이다.
사계절 모습이 다 다른 이곳은 어렵사리 풍경을 허락한 만큼이나 아름답고 고요하다. 남들은 몰랐으면 싶은 곳이기도 하다. ▶먹을 것, 머물 곳=물영아리오름에서 차로 20여분 떨어진 곳에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가 있다. 해안에 인접한 해비치는 제주 고급 호텔들 중에서도 드물게 파도 소리와 바다 비린내가 가깝게 느껴지는 곳이다.
최근에는 제주 식재료와 조리법으로 프랑스 정통 코스 요리를 선보이는 레스토랑을 열었다. ‘밀리우(Milieu)’다. 유명 셰프인 윤화영씨가 주방 총괄을 맡았다. 프랑스 국립 고등 조리학교(ESCF)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프랑스 요리 명장들로부터 경험을 쌓은 것으로 유명하다.
7~8월 밀리우에서는 제주산 제철 광어와 농어를 프렌치 스타일로 내놓는다. 물회 스타일로 만든 차가운 앙트레(전식)는 광어 세비체(Ceviche)에 제주도 애플망고, 경상도 제피(산초), 전라도 유자까지 남도 세곳의 맛을 버무렸다. 윤화영 셰프는 지금 제주에서 맛 볼 수 있는 최고 음식으로 애플망고를 꼽았다. 최상품은 개당 2만원 정도로 비싸다고.
메인 요리는 생선과 육류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는데, 3주 이상 숙성시킨 제주산 한우 안심 스테이크의 맛이 일품이다.
윤 셰프가 전하는 스테이크 요리 비법 한 가지. 그는 “쇠고기가 가장 맛있는 때는 도축 후 25일이 지난 시점”이라면서 “고기를 랩에 꽁꽁 싸서 섭씨 2도 정도가 유지되는 냉장실에 넣어 3주 정도 숙성시키면 된다”고 말했다.
제주=글·사진 김아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