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영업맨’성세환 BNK금융지주회장…내실 채우며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그의‘타이밍 경영론’은

국궁진력 사이후이(鞠躬盡力 死而後已ㆍ공경스럽고 신중함을 지키며 온힘을 다 바치다가 죽은 후에야 멈춘다)

중국 삼국지연의에서 촉나라의 제갈공명이 위나라를 치기 위해 출정하기 전, 후주(後主) 유선에게 북벌을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의지를 담아 올린 ‘출사표’의 한 구절이다. 만주족과 한족을 융화시키고 청나라가 대제국으로 발전하는 기틀을 마련한 청나라 4대 황제 강희제가 국정철학으로 삼은 구절이기도 하다.

이 출사표에는 성세환(63) BNK금융지주 회장의 ‘36년 외길 뱅커’(banker)의 모든 길이 오롯히 담겨 있다. “차장 때는 차장의 역할을, 지점장 때는 하나의 지점을 경영하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성장을 하고 자연스럽게 조직에서 필요한 사람,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 되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되묻는 성 회장의 말엔 “내 자세를 낮춰서 최선을 다한다”는 그의 철학이 묻어 있다. 성 회장이 자신의 좌우명이기도 한 ‘국궁진력’을 올해 BNK금융지주의 경영화두로 삼은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정성으로 온 힘을 다한 36년 은행가의 길=사실 36년 간 은행원의 한 길만 걸어온 성 회장의 삶 자체가 신중히, 온 힘을 다해온 여정이다.

그가 은행원의 길을 들어선 것은 우연이었다. 대기업 계열사에 합격해 입사를 앞두고 있던 1978년 11월 어느 날. 길을 가다 부산은행 신입행원 모집공고를 자신도 모르게 한참을 바라다보았다고 한다. “그것이 은행원의 삶을 시작하는 단초였다”고 성 회장은 회상한다.

당시는 중동 특수 덕에 국내 대기업이 소위 ‘잘 나가던’ 시절이었다. 많은 대졸자들이 국제 무대를 꿈꾸며 건설사와 무역 상사로 모여들었다. “부산 지역 대학 출신으로서 지역 향토은행인 부산은행에서 근무하는 것이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것보다 훨씬 보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상고 출신의 독무대인 은행에서 주산도 못하는 그에겐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며칠을 고민하다 대기업 입사를 포기하고 부산은행에 덜컥 원서를 냈다. 그가 ‘진짜 프로 은행원’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계기도 우연치 않게 찾아왔다. 처음 배치 받은 지점은 부산 자갈치 시장 인근 충무동 지점. 하루는 상인 한 분이 돈을 입금하러 왔다. 그날따라 유달리 비린내가 많이 나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뿌렸다. 그 상인은 볼일이 끝나고 일어서며 “총각~~ 돈에서 냄새가 많이 나서 미안하데이, 돈에 붙은 비늘을 턴다고 털었는데 우짜노, 미안하데이~ 내일은 정리 잘해서 올게”라며 미안해했다고 한다.

“순간 아차 했다. 고객들은 은행 창구너머에 있는 은행원을 전문가, 즉 프로로 바라보는 데 난 그 순간 감정에 이끌려 프로답지 못 했다”

이후 그는 신입 행원들을 만날 때마다 당시의 경험을 꺼내며 은행원의 기본을 강조한다. 행원은 행원대로, 지점장은 일선 경영자로서, 최고경영자(CEO)는 최고 책임자로서 요행을 바라거나 연줄에 의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 그 보상이 주어진다고 믿는다. ‘국궁진력’이라는 좌우명 역시 그의 체험에서 묻어난 진심인 셈이다.

▶나는 ‘영업맨’이다=그는 2년간의 충무동 생활을 마치고 본점 조사기획부, 지금의 전략기획부의 조사역할을 맡았다. 은행의 전체 전략을 기획하는 부서다. 이후로도 그는 외환위기 직후 비상대책반에서 부은리스의 청산을, 2000년대 초반에는 인사부에서 인력 구조조정을 담당했다. 2009년 2000억원 대의 증자도 그의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기획통’으로 불린다.

하지만 성 회장 자신은 ‘영업맨‘으로 불리길 바란다. 2001년 처음 엄궁동 지점장으로 발령이 나자 좀더 큰 지점으로 옮겨주겠다는 제의가 빗발쳤다. 그러나 그는 생각이 달랐다. “본점 경력으로 해택을 받아 큰 점포에 가느니 작은 점포에서부터 차근차근 시작해서 실력을 쌓아나가겠다”는게 그의 결심이었다.

초반에는 영업스킬이 부족해 문전박대도 많이 당했다. 그래서 아예 약속없이 수시로 명함을 놓아두고 돌아왔다. “여러 차례 그 일을 반복하니 결국 ‘한번 보자’며 연락이 와서 실제 거래로 이어지더라”며 멋쩍게 웃었다. 그는 1여년 만에 엄궁동지점을 1등 지점으로 만들었고 사상공단지점, 녹산공단지점 등 큰 기업점포로 자리를 옮기면서 기업금융 노하우를 쌓아나갔다. 영업에서의 경험은 바로 경영의 노하우로 녹아들었다. 점포에서의 경험을 살려 지난해에는 고객들이 필요로 하는 은행업무를 현장에서 원스톱으로 해결하는 ‘생생데이’를 만들어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경영의 핵심은 ‘결단’과 ‘타이밍’=부산은행 내에서 성 회장은 푸근한 집안 맏형과도 같다. 하지만 선이 굵고 한 번 판단한 일은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도 갖고 있다. 그가 경영에 있어 ‘결단’과 ‘타이밍’을 중시하는 것도, 그리고 그 힘의 원천도 모두 ‘36년 외길 은행가’의 여정에서 터득한 것들이다.

금융위기 직후인 지난 2009년 신종자본증권 대신 증자를 택한 것도 이의 연장선상에 있다.

“금융은 늘 정도로 가고 바른 길로 가야 합니다. 증자를 안하고 쉽게 가는 길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도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때 그 때 타이밍에 피하려 하지 말고, 증자를 해야 하면 증자를 하고, 투자를 해야 하면 투자를 해야 합니다. 타이밍은 절대로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지난해 경남은행을 인수하는 과정에서도, 그리고 올해 경남은행 잔여 지분(43.03%)을 주식의 포괄적 교환방식으로 인수하는 데서도 ‘타이밍 경영’이 드러난다. 경남은행을 인수하는 과정은 그리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안 될 일’이라며 나중을 기약하라는 ‘훈수 아닌 훈수’도 많았다. 일각에선 ‘승자의 저주’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있었다. “인수를 하면 하고 아니면 다른 길을 찾는 것이지 얕은 수를 쓰며 돌아가면 될 일도 안된다”며 경남은행도 오랜 기간 주인이 없으면 리스크 관리가 안된다는 점을 들어 노조와 도민을 적극 설득했다. 2009년 신종자본증권 대신 증자라는 정도의 길을 택한 것도 경남은행 인수전에 뛰어들 수 있었던 든든한 배경이 됐다.

▶욕심을 내지 않는다…내 역할은 내실로 미래를 준비하는 것=지난달 연임이 확정된 그는 자리에 대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그가 임기 2기의 경영 방향으로 ‘내실 경영’과 ‘미래 경영’을 내세우고 있는 것도 BNK금융의 새로운 성장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과 무관치 않다고 한다.

그는 섣부른 몸집 부풀리기도 경계한다. IMF 당시 위기를 겪으면서 그가 뼛 속 깊이 느낀 것은 “금융은 절대적으로 안정적으로 가야 한다. 자산성장을 하는 것은 절대 중요하지 않다. 수익창출을 할 수 있는 모든 부분들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저금리, 저성장 시대인 만큼 무리하게 자금을 끌어모아 자산을 늘리기 보다는 수익 구조를 튼튼히 해 때를 기다리면 기회는 찾아온다는 것.

성 회장은 경남은행의 지주사 완전 편입과 은행과 보험ㆍ증권 등 비 은행 분야의 ‘융합’ 작업을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로 보고 있다. “애플에 스티브 잡스가 없어도 팀 쿡이 제 역할을 했듯이 그 이후의 그림은 이후 CEO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 퇴임 후엔 지금까지 자신과 부산은행을 성원해 온 부산 지역민들에게 봉사하며 살겠다는 소박한 생각뿐이 없다고 한다.

원호연 기자/


why37@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