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너 기자 됐다매? 그럴줄 알았어. 옛날 평화의 댐 성금을 끝까지 안내더니만…”
거의 30년만에 만난 학교 친구 첫마디가 이랬다. 뭔 소리? 아, 가물가물하며 잡힐 듯 하다. 1980년대 중반, 당시 북한이 금강산댐을 무너뜨리면 서울이 물바다가 될 것이라며 전두환정권은 평화의 댐 건설을 위해 국민성금 모금 운동을 벌였다. 학교에서도 고사리 같은 손에서 돈을 걷었다. 얼마였는지 생각나진 않지만 끝까지 내지 않은 기억이 난다.
“다른 친구와 다른, 뭔가 의식이 있다고 느꼈어. 그런데 기자가 됐구먼.”
기자가 ‘의식’있는 부류라는 녀석의 선입견도 다소 황당했지만, 더 재미있는 것은 내가 의식이 있어서 돈을 내지 않은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사실 그땐 형편없이 가난했다. 자존심때문에 그리 말하지 못하고 끝까지 버텼을 뿐이다. “돈이 없어서 그랬어”라고 녀석에게 말했고, 30년만에 내가 ‘진실’을 얘기했는데도 그는 믿지 않는 듯했다.
#2. 지난 주말. 집에서 멍 때리며 채널을 돌리는데 영화 한편이 나온다. ‘댄싱퀸’이다. 황정민ㆍ엄정화 주연의 영화. 재방을 통해 대여섯번은 본 것이다. 그래도 재밌다. 화면엔 황정민이 등 떠밀려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고, 영웅이 되는 장면이 나온다. 밀려서 선로로 내려갈 수 밖에 없었던 ‘진실’을 사람들이 알았다면, 승승장구하는 주인공의 얘기는 꾸며질 수 없었을 것이다.
만우절(All Fool’s Day)이다. 영어 뜻으로는 ‘많은 이들이 얼간이가 되는 날’이다. 장난과 가벼운 거짓말이 이날만큼은 용납된다. 심한 전화 장난은 구속이나 벌금 대상이지만, 이날 하루 쯤은 가벼운 거짓에 속아 허둥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낭만일 수 있다. 365일 중 364일을 진실을 갈구하면서 허덕대며 사는데, 하루쯤 거짓세상의 즐거움에 빠진들 어떠랴. 이런 점에서 만우절은 아마 진실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만든 날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실의 무게는 다르다. 내가 평화의 댐 성금을 돈이 없어 못냈거나 의식이 있어 안냈거나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댄싱킹 주인공이 승승장구하는 계기로 설정한 ‘등떠밀린 살신성인’도 영화 소재일 뿐이다. 둘다 수많은 진실의 종류 중 사소한 것이다.
하지만 엄청난 무게로 다가서는 진실도 있다. 요즘 기업들을 벌벌 떨게 하는 ‘비자금 수사’가 대표적이다. 검찰이 포스코에 이어 동국제강에 수사 칼날을 들이대면서 기업 분위기는 싸늘하다. 최근 형성된 사정(司正)정국이 자원외교 등을 최종 타깃으로 한 이명박(MB)정부 표적 수사라는 세간의 입방아가 겹쳐지면서 잔뜩 긴장하고 있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말도 들린다. 이같은 세상의 정의와 관련된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비자금이 오고갔다면 반드시 찾아내야 하고, 당사자들을 엄벌해야 한다. 혈세를 사익을 위해 펑펑 썼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당리당략을 위해 정권마다 반복되는 기업과 전(前)정부 타깃 수사라면 얘기는 좀 달라진다. 진실 추구를 가장한 의도적 공격(?)은 경계할 일이다.
만우절날, 괜히 진실 얘기를 꺼냈다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