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2월말~3월초는 내겐 기다림이다. 뭔가 오기를 바라는 시기다. 내가 눈알이 빠지도록 기다리는 것은 고로쇠다.

몇해 전, 서울에서 장사를 하던 큰 동서와 큰 처남은 잇따라 지리산 고향으로 내려갔다. 서울 생활 할만큼 했고, 장사도 할만큼 했으니 고향만한 곳이 또 있겠느냐는 말과 함께 귀향한 것이다.

그들은 겨울과 초봄 사이 늘 하는 게 있다. 고로쇠 채취다. 허가를 얻은 수십그루의 고로쇠 나무에서 직접 수액을 받아낸다. 겨울 산을 오르고 또 오르고, 내리고 또 내리면서 수액을 얻어내는 것이다. 그러니 나로선 액수를 따질 수 없는 귀하디 귀한 고로쇠다.

“큰 형부가 이번에도 고로쇠 나무를 돈주고 양도 받았는데, 호스가 낡아 다 교체했대. 150만원이나 들었대. 그 나무에서 얼마나 나온다고, 손해 보는데도 왜 하는지 몰라.”

아내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마, 자기가 좋아하니까 손해인데도 고로쇠 채취를 하는 건지도 몰라”라고 귀띔한다.

그렇다. 난 고로쇠 마니아다. 아내는 내게 ‘고로쇠 귀신’이란 이름까지 붙여줬다. 고로쇠 나무가 뼈를 이롭게 한다는 ‘골리수(骨利樹)’에서 나온 말이라는 데, 그건 잘 모르겠다. 다만 동서나 처남이 보내준 고로쇠 4통은 이틀이면 없어진다.

그냥 벌컥벌컥 마시는 게 좋다. 오장육부가 씻기는 듯한 느낌, 목을 타고 내려간 수액이 찌꺼기를 감싸고 맨밑으로 쑥 내려가는 느낌. 그게 좋을 뿐이다. 며칠전, 퇴근을 하니 현관 앞에 고로쇠 박스가 떡 하니 놓여 있다. 세상에서 가장 기다려졌던 택배 선물.

어제였다. 귀한 것은 나누면 나눌수록 더 귀해지는 법. 기업 임원과 점심을 하는 자리에 고로쇠 1통을 가져갔다. 그 역시 좋아한다고 했다. 그런데 일행 중 한사람이 이같이 말한다. 물론 농담이다. “근데 친척한테 받으면 김영란법 걸리는 것 아니죠?”

갑자기 화제가 김영란법으로 쏠린다. 오전에 있었던 김영란 전 권익위원장의 기자회견을 둘러싼 저마다의 생각도 쏟아진다.

임원 역시 이런 말을 한다. “방송사 분과 정말 친한데, 부부끼리 잘 어울리는 편이예요. 수십년간의 인연인데. 그쪽에서 옷 선물도 하고, 내 쪽에서도 이것저것 선물하는데. 이런 것도 앞으론 잘 못하겠지요.”

김영란을 매도하는 것은 아니다. 투명사회에 대한 시대적 갈증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김영란법은 다른 누구의 이름을 빌려서라도 등장했을 것이다. 김영란법으로 인해 골프장은 문을 닫게 될 것이고, 이름있는 식당은 죄다 망할 것이며, 광화문에 벌써 2만9000원 짜리 김영란메뉴가 나왔다는 말에 여러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또다른 생존법이 작동할 것으로도 본다. 군대용어를 빌리자면 까라는 까면 될 일. 투명사회로 갈 수 있다면, 약간의 진통은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지리산을 숨차게 오르내리며 얻은 귀한 수액을 동서에게 보내주는 것, 부부끼리 선물을 주고 받는 것. 이같은 일도 괜히 움츠려지는 사회로 간다면 그건 동의할 수 없다.

세금은 더 낼 수 있지만, 잔정(情)마저 규제받게 된다면 박근혜정부와 지금의 국회, 김영란을 두고두고 원망할 것이다. ys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