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강승연 기자]“무조건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뭐라도 해야할 것 같았습니다. 한 번 쯤은 마음 가는대로 몸을 맡기겠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그 날이었던 거죠.”

2014년 4월 16일, 476명의 승객을 태운 세월호가 차가운 바다 아래 가라앉은 그 날이 황필규(47ㆍ사법연수원 34기) 변호사에겐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10년 간 공익 변호사의 길을 걸어온 황 변호사에게도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진도로 내려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피해자 유가족들의 분노와 불신으로 가득찬 팽목항에 가봤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하지만 법률 지원뿐 아니라 그 어떤 형태라도 유가족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가족들의 의견을 정리해 정부에 전달하는 역할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4월 18일 밤 진도로 향했다. 다음날 찾은 팽목항에서 해양경찰청의 성의 없는 브리핑을 본 황 변호사는 마침내 결심이 섰다.

“조금이라도 진정성이 있었다면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란 느낌을 받았죠. 얘기를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거짓인 걸 알고 있었어요. 정부 브리핑을 보고 그렇게 운 건 처음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황 변호사는 대한변호사협회 세월호 특위 간사를 맡아 유가족들의 지원을 총괄하게 됐다. 세월호 특별법이 진통 끝에 지난 1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그런 그에게도 아쉬움은 남았다. 세월호 특별법이 기소권ㆍ수사권 문제로 발목잡혔던 데 이어 인력ㆍ예산 문제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출범이 늦어지고 있는 것. 그는 “특별검사를 안에 두냐, 밖에 두냐의 느낌과 같다”면서 “권력이 제시하는 가이드라인과 어젠다로 맞춰진 상태에서 논의가 되는 게 답답하다”고 했다.

사실 황 변호사가 세월호 가족들을 돕게 된 건 우연이 아니다. 서울대 법대에 들어가면서부터 인권과 정의, 약자를 위해 일하고 싶다는 꿈을 꿨다. 그가 사법연수원을 졸업할 즈음인 2004년 국내 최초로 비영리 공익변호사 모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이 설립됐고 이듬해 공감에 합류하면서 공익 변호사로서 첫 발을 내디게 됐다.

그가 맡게 된 첫 소송은 난민 사건이었다. 한글로 된 난민 관련 문헌을 모두 읽어도 하루가 채 안 걸리고 출입국관리법에 조항 대여섯개밖에 없던 때다. 상고심까지 4~5년 걸리는 더딘 작업이었지만 학계, 시민단체와 머리를 맞대고 난민들의 열악한 삶을 바꾸기 위해 고민을 거듭했다. 그 결과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하는 쾌거를 올렸다. 난민 사건을 다뤄본 변호사도 이젠 100명을 넘는다.

최근 그의 가장 큰 고민은 입양 문제다. 어느 날 사무실에 짧은 소멸시효 탓에 위조된 입양 서류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찾아온 해외 입양인이 그 시작이었다. 그는 “반세기 동안 전 세계 해외입양 인구 3명 중 1명이 한국인”이라면서 “친부모가 다시 아이를 기를 수 있는 기준이 없고 설사 법 규정이 있더라도 유명무실하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황 변호사는 앞으로 현장 목소리를 들으며 입양 체계를 바꿔갈 계획이다. 이것이야말로 공익 변호사의 일이란 생각에서다.

황 변호사는 “세월호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공익 변호사가 왜 필요한지 느끼게 됐다는 것”이라면서 “공익 변호사의 활동에 관심을 갖고 지원과 지지가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수임료를 거의 받지 않고 개인 기부로 어렵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공감에 대한 지원도 부탁했다. “공익 변호사들이 하나둘씩 생기고 있는데 적자 상태인 우리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 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후원계좌는 하나은행 162-910015-36804(예금주 (재)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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