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단념자 50만명 사상최대…열정보다는 사회적지위·연봉중시 상대적 취업유리 자연계선호 뚜렷…좋은 일자리 창출등 정부대책 필요

#서울의 명문대 작곡과를 다니던 A(32) 양은 졸업에 즈음해 치과전문대학원에 진학했다. 성악을 전공하신 어머니 때문에 당연하게 음악을 해왔지만 평생 음악을 직업으로 삼는 데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작곡 이론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미래도 불투명한 데다 성공의 길도 좁았다. 결국 A 양은 “음악은 취미로 하고 다른 직업을 갖는 쪽이 내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하겠다”고 생각하고 평생 해 온 음악공부를 포기했다. 처음에는 의학전문대학원을 갈까도 고민했지만, 수련과정이 힘들다는 주변의 만류 때문에 ‘치전’을 택했다.

꿈보다 돈? ‘맨발의 청춘’이 사라진다

지난달 취업을 포기한 ‘구직단념자’가 50만명에 육박해 사상 최대를 기록하는 등 청년 취업난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꿈’도 사그라들고 있다. 취업을 위해 젊은이들이 미래의 꿈과 열정을 포기하면서 대한민국의 미래도 암울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 취업난 심화로 20대~30대 젊은이들이 꿈을 따라가기보다는 사회적 지위와 연봉 등에 맞춰 진로를 선택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청춘들의 ‘열정 기피현상’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열정기피현상은 이미 10대 고등학생 때부터 나타난다.

실제로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표한 ‘2014년 한국 진로교육실태조사’에 따르면 남녀 중ㆍ고등학생과 여자초등학생이 선호하는 직업 1위는 모두 교사였다.

취업이 상대적으로 손쉬운 자연계 선호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교육과정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수능 응시생 중 자연계 응시생의 비율은 2011년~2015년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2011년 31.9%였던 자연계응시생 비율은 2015년 38.4%로, 사상최대 수준으로 늘었다. 반면 인문계 응시생의 비율은 2011년 54.5%에서 2015년 52.1%로 감소 추세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다. 도전적 직업보다는 교사나 공무원 등 안정적 직업을 갖기 위해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고시공부에 매진한다.

심지어 고소득전문직인 의대 내에서도 정형외과 등은 기피되고, 정신과 등이 선호된다.

<사진>노량진 공무원 학원
취업난이 갈수록 심화되면서 20대~30대 젊은이들이 어린시절 꿈을 따라가기보다는 사회적 지위와 연봉 등에 맞춰 진로를 선택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노량진 일대 공무원학원가.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하지만 이같은 현상에 대해 젊은이들을 무턱대고 비난할 수만은 없다.

신지은 부산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이들을 ‘꿈이 없다’라고만 보는 것에 반대한다”며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사회를 만든 것은 어른들”이라고 진단했다.

신 교수는 “예전에는 좋은 사회를 이루고 싶은 게 꿈이었지만 지금은 좋은 곳에 취직하는 것이 꿈이고, 성과 위주의 사회에서 열심히 달리는 게 가장 중요한 목표인 상황”이라며 “꿈과 열정을 갖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사회가 청년들을 속이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40만 명에 가까운 대졸자 중 정상적으로 취업이 되는 사람은 일정 수에 불과한만큼, 경제가 크게 좋아지거나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상황은 유지될 수밖에 없다”며 우울한 전망을 내놨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암울한 대한민국의 미래상을 바꿔놓기 위해서는 ‘정부의 일자리 창출’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송재룡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정부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기업체나 산업을 발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병훈 교수 역시 “의식적으로 좋은 일자리의 총량을 늘리고 창업에 지원해 대학생들이 실패하더라도 재도전할 수 있는 인프라와 행정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당장 좋은 일자리가 없으면 모두들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만 지속하게 되고, 결국 저임금 노동을 부추겨 젊은이들의 노동력을 마모시킨다”며 “좋은 일자리를 늘리고, 노동 생산성을 높이는 환경을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지혜ㆍ신상윤ㆍ배두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