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혜미 기자] 설 연휴를 앞둔 지난 16일, 서울 사당동 아트나인에 영화인들이 모였다. 독립예술영화관모임과 한국독립영화 배급사 네트워크 관계자들은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일방적으로 추진 중인 ‘한국 예술영화 좌석점유율 지원 사업’을 백지화하고, 영진위가 영화계가 한 테이블에서 논의할 것을 주장했다. 1년에 26편의 영화를 선정, 35개 스크린에서 일정 회차를 상영하면 지원금을 주겠다는 이 정책이 영화관의 자율적인 작품 선정 권한을 침해하고 독립·예술영화들의 개봉 기회를 박탈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정상진(47) 엣나인필름·아트나인 대표도 이 자리에 함께 했다. 사실 엣나인필름에서 찰리 채플린 대표작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다는 소식과 아트나인 개관 2주년 등의 시기가 맞물리며 그를 만나려 했었다. 마침 영진위의 새 정책 논란이 영화계를 뒤흔들면서 그는 개인 사업보다 영화계 전체에 떨어진 ‘핵폭탄급 충격’에 더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저마다 특색있게 운영되던 예술영화관들이 영진위 위탁업체가 선정한 작품을 일괄 상영한다는 것은 운영자들 입장에선 황당한 일이다. 영진위의 입맛에 맞지 않는 작품은 배제하는 방식으로 전용관 운영에 간섭하겠다는 맥락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정 대표가 예술영화관 아트나인을 만든 취지를 무색케 하는 것이다. 그는 기계적으로 영화를 트는 멀티플렉스 운영에 회의감을 느끼면서, 2년 전 아트나인의 문을 열었다.
“영화를 전공하는 이들 대부분이 영화관을 갖는 게 꿈이에요. 아트나인도 그 꿈에서 시작된 거죠. 멀티플렉스(씨너스 1호점)를 운영하면서 ‘과연 이 극장이 내 극장인가’ 스스로 질문하게 되더라고요. 프로그램을 주체적으로 짜는 게 아니라, 배급사들 힘에 의해서 영화를 선택할 수 밖에 없잖아요. 돈은 벌지만 만족감은 없었어요. 멀티플렉스를 운영해서 번 돈을 아트나인에 쏟아붓고 있는데, 즐거움은 더 커요. 오늘 기자 회견도 여기서 열 수 있는 특권이 있잖아요.”
아트나인은 멀티플렉스 영화관과는 다른 풍경으로 관객들을 맞는다. 로비엔 팝콘 대신 파스타 냄새가 그득하고, 시원하게 펼쳐진 야외 극장이 시선을 잡는다. 상영관 내부엔 세계 최초의 ‘뒤로 기운 스크린’이 자리한다. 영화 상영 전 광고는 없다. “돈보다 중요한 게 뭔지 관객들과 얘기하고 싶다”는 정 대표의 소신 때문이다. 이처럼 세심하게 신경을 썼지만, 멀티플렉스 시설에 익숙한 관객들의 푸념을 듣는 일도 허다하다.
“파리의 예술영화관을 보면 더 열악한 곳이 많아요. 한국에 가져다 놓으면 일주일 안에 망할 수준이죠. 그런데도 관객들이 극장을 지켜주고 있어요. 예술영화관의 콘텐츠를 지지하는 거죠. 국내에선 관객들이 멀티플렉스를 기준으로 서비스를 요구해요. 시설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려면 건물을 새로 지어야 하는데, 대개는 계산적인 부분 없이 얘기하는 거죠. 그럴 때는 ‘내 뜻과 다르구나’ 싶기도 하고, 욕 먹으면서 1년에 5억 씩 적자 보며 이걸 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어요.”
그럼에도 정 대표는 “고등학교 때부터 영화라는 한 길을 쭉 달려 왔으니 5년 후, 10년 후에도 같은 길을 걷고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영화계에 몸담고 있는 한, 예술영화 전용관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분투도 이어갈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꿈 꿔온 영화를 대중에 선보이기 위해 극장을 만든 만큼, 이를 상영할 권리를 지키려는 것은 당연하다. 엣나인필름이 꾸준히 소개해 온 신인 감독의 재기발랄한 작품, 소외된 장르의 한국 영화들, 사회를 반영하는 시야의 작품 등을 만나고 싶다면 관객들 또한 ‘매의 눈’으로 영화계를 주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