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선 또는 금장식 잇기, 우리나라에는 공식적인 명칭조차 없는 이 낯선 용어는 일본에서 킨츠기라고 하는 도자기 그릇 수리 기법이다. 그릇의 이가 빠지거나 작은 금만 가도 내다 버리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본은 완전히 깨진 그릇이라도 킨츠기를 통해 조각을 서로 잇고 금가루로 장식해 아름다운 도자기로 재탄생시키는 문화가 있다. 이렇게 금선으로 이어 붙인 도자기는 역사가 되고 예술이 된다.
30~40년 전만 해도 동네마다 전파사라고 불리는 사설수리점이 하나씩은 있었다. 그곳에선 TV나 라디오, 선풍기 등 웬만한 전자제품의 수리가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는 추억 속에서나 떠올리는 장소가 되었다. 최근 55년 만에 문을 닫는다는 전파사 주인의 인터뷰 기사를 보니 손님이 찾아와도 고칠 수 없는 제품이 많아 그냥 돌아가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전자제품은 늘어나는데 쉽게 고쳐쓰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소비자들은 왜 고치는 것을 포기하고, 사설수리점에서는 왜 고칠 수가 없을까? 첫째는 수리에 비용이 더 들기 때문이다. 수리를 하는 것보다 새 제품을 사는 것이 비용 측면에서 더 합리적인 경우가 많다. 스마트폰 같은 첨단기기는 제품 가격에 맞먹는 수리비용 탓에 수리를 포기한다. 선풍기 같은 저가 제품 역시 고칠 곳은 마땅히 없다.
둘째는 제품에 쓰이는 특별한 부품 때문이다. 간단한 부품 교체만으로 수리가 가능해도 사설수리점에서는 해당 부품을 구할 수가 없다. 제조사들이 운영하는 서비스센터는 휴가라도 내야 이용이 가능한 곳에 있어 접근성이 떨어진다.
셋째는 제품의 수리정보가 없다는 것이다. 제조사는 고장유형별 수리방법에 대한 정보를 일반에 공개하지 않는다. 제품 구조상 일체형으로 나오거나 수리를 고려하지 않고 설계·제작된 제품이 많아 소비자 스스로 또는 사설수리점에서 수리할 수가 없다. 소비자의 수리 포기는 단순히 제품의 사용을 중단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제품의 수명 단축과 폐기를 뜻하고, 이렇게 배출된 쓰레기는 환경에 악영향을 끼친다. 수리할 권리를 확보하는 것은 환경보호, 즉 탄소중립과 순환경제의 매우 중요한 요소다. 수리권 확보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유럽연합(EU)이다. 올해 4월 수리할 권리 지침이 의회를 통과했다. 이 지침은 소비자가 수리를 포기하지 않게 해 순환경제의 기반을 구축한다는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컨대 제조사는 부품 및 수리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한국소비자원에서는 일찍부터 수리할 권리와 관련한 연구를 수행하고 국회 입법 활동을 지원하는 등 정부, 소비자단체, 환경단체 등과 함께 소비자 수리권 제도화에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실로 2024년 순환경제사회전환촉진법이 제정·시행되면서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뤘다. 사업자가 부품보유기간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도록 하는 개정 소비자기본법도 올해 초부터 시행 중이다.
수리할 권리는 단순히 고장 난 기기를 수리해 쓰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소비자가 주체적으로 기술의 발전과 이용에 대해 책임지고 지속가능한 환경을 위해 지켜져야 하는 권리다. 깨진 도자기도 우리가 쓰는 제품도 사용하기에 따라 역사가 되고 예술이 될 수 있다. 가까운 미래에 손쉽게 수리를 맡길 수 있는 수리점이 동네에 생기길 기대해 본다.
윤수현 한국소비자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