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청, 이르면 이달 KDDX 사업추진방식 결정
“수의계약 시 HD현대, 경쟁입찰 시 한화 유리”
폴란드 잠수함 사업 조만간 공식 입찰 이뤄질듯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HD현대와 한화가 국내외에서 조 단위의 특수선 사업을 두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하반기 입찰을 앞둔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을 두고 물밑 신경전이 거세지는 모양새다. ‘특수선 명가’ 타이틀을 건 자존심 싸움에서 누가 먼저 승기를 잡을지 주목된다.
3일 업계에 따르면 방위사업청은 이르면 이달, 늦어도 8월에는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열고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의 사업추진방식을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관행대로 수의계약을 할지, 경쟁 입찰을 진행할지 여부를 정하는 것이다. 해군의 KDDX 전략화 계획상 연내에는 선도함 건조 업체가 선정돼야 한다고 방사청은 보고 있다.
KDDX 사업은 오는 2030년까지 약 7조8000억원을 들여 6000t급 한국형 차기 구축함 6척을 건조하는 프로젝트다. 사업은 개념설계와 기본설계, 상세설계·선도함 건조, 후속함 건조 등의 순으로 진행되는데 개념설계는 한화오션이, 기본설계는 HD현대중공업이 수주했다.
HD현대중공업은 관례대로 수의계약을, 한화오션은 ‘KDDX 군사기밀 유출 사건’을 고려해 경쟁입찰을 진행해야 한다고 각각 주장하고 있다.
현행 방위사업관리규정에 따르면 기본설계가 잠정 전투용에 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았을 때 위원회 심의를 거쳐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가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를 계속 수행하게 할 수 있다. 이 규정에 따라 그간 특수선 사업에선 관행적으로 기본설계 수행업체가 상세설계·선도함 건조도 수행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HD현대중공업이 주목하고 있는 것도 이 대목이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기본설계 업체와 상세설계 업체가 달라질 경우 설계 결함에 대한 시비가 있을 수 있고 기본설계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고 숙지하는 데 시간이 소요돼 KDDX 전력화 시기가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이 기본설계 사업 입찰 과정에서 군사기밀을 불법 탈취한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상황인 만큼 경쟁 입찰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앞서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은 KDDX 사업 등과 관련한 군사기밀을 촬영해 사내에 공유하는 등 군사기밀보호법을 위반한 혐의로 지난해 11월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수의계약은 KDDX 개념설계보고서 불법취득으로 인한 보안감점 적용을 무력화함으로써 특정 업체에 특혜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투명하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사업자를 선정하는 것이 KDDX 사업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경쟁 입찰로 추진될 경우 보안 감점을 적용받고 있는 HD현대중공업으로서는 사업자 선정이 어려워진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통상 함정 입찰에선 소수점 차이로 승패가 갈리는데 HD현대중공업은 1.8점의 감점을 적용받고 있다. 실제 지난해 8월 울산급 호위함 5, 6번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서 HD현대중공업은 최종 91.7433점을 받으며 한화오션(91.8855)에 0.14점 차이로 밀렸다.
HD현대와 한화는 폴란드가 추진하는 해군 차기 잠수함 사업인 오르카(Orka) 프로젝트와 미국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사업 진출 등을 두고도 경쟁하고 있다.
특히 폴란드 잠수함 사업의 경우 최근 폴란드 정부가 사업 참여 의향서를 제출한 기업들과 예비 협상을 마친 것으로 전해져 조만간 공식 입찰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오르카 프로젝트는 잠수함 3척을 신조·도입하는 것으로 사업 규모는 약 22억5000만유로(약 3조3500억원)다.
양사는 최근 폴란드 현지에서 잇따라 설명회를 여는 등 기술력 알리기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오르카 프로젝트에 참여 의향서를 낸 11개 조선업체 중 유일하게 3000t급 잠수함(KSS-Ⅲ PL)과 2000t급 개발 잠수함(HDS-2300) 등 두 가지 플랫폼을 동시에 제안했다.
한화오션은 잠수함 정비 기술과 주요 기자재 공급업체의 현지 진출을 확대하고 향후 폴란드 해군이 자체적으로 MRO 분야를 수행할 수 있도록 현지에 지원센터를 설립하는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미국 MRO 시장 진출과 관련해선 한화가 미국 조선소 인수를 성사시키며 앞서 나가는 모양새다.
MRO 전담 조직을 운영해온 한화는 현지 생산거점 구축을 위해 지난달 필리 조선소를 인수했다. 필리 조선소는 1997년 미 해군 필라델피아 국영 조선소 부지에 설립된 이후 미국에서 건조된 석유화학제품운반선(PC선), 컨테이너선 등 대형 상선의 약 50%를 공급해오고 있다.
HD현대중공업도 지난해 미 해군 함정 MRO를 위한 자격인 MSRA를 신청해 올해 초 야드 실사까지 마친 상태다. 지난 4월에는 미국을 거점으로 하는 글로벌 방산기업인 GE에어로스페이스 등과 기술협약을 맺으며 MRO 사업에 협력하기로 뜻을 모았다.
미국의 함정 MRO 시장 규모는 연간 20조원에 달한다. 미국은 현행법상 안보, 자국 조선업 보호 등을 이유로 해외에서 함정을 건조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나 최근 자국 건조 원칙을 깨야 한다는 제언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 해군의 무기 조달과 예산을 책임지는 카를로스 델 토로 미 해군성 장관은 조선업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한국, 일본 등 동맹국과 협력해야 한다며 협력 추진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