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거버넌스포럼 논평

기업거버넌스포럼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 모습 [연합]

[헤럴드경제=유혜림 기자] 최근 공개된 사건 판정문에서 박근혜 정부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과정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기관 투자자들의 의결권 행사 근거와 내역을 상세히 공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밸류업' 효과를 누린 일본의 사례처럼 연기금과 위탁운용사들이 의결권을 적극 행사하고 그 내역도 공개해야 한다는 진단이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20일 논평을 통해 "국민연금과 자산운용사는 국민과 고객들의 자산을 대신해서 운용하는 수탁자"라며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함에 있어서도 고객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이 당연한 책무"라며 이같이 밝혔다.

앞서 지난 15일 법무부는 정부와 미국계 헤지펀드 메이슨 캐피탈의 국제투자분쟁 해결 절차(ISDS·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사건 판정문 전문을 공개했다. 중재판정부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내부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피청구국(한국 정부)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본건 합병 표결이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에 부의됐을 것임이 확실히 입증됐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정부의 부당한 압력으로 주주들에게 불리한 합병이 이뤄지고, 옛 삼성물산의 주주인 메이슨 캐피탈이 손해를 봤다는 것이다. 이런 판단을 토대로 중재판정부는 지난달 11일 한국 정부가 메이슨에 약 438억원과 지연이자(2015년 7월부터 5% 연복리)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와 관련, 포럼은 "이러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과정에서의 절차적 하자로 인해 메이슨캐피탈과 엘리엇 등이 제기한 국제소송에서 한국 정부가 연이어 패소하며 수천억 원의 혈세를 낭비하게 됐다"며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자금과 직결되는 중대한 대규모 합병에 찬성하면서 구체적인 의결권 행사 사유 및 근거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올해 주주총회에서도 국민연금은 정부가 대주주인 기업은행이 KT&G를 상대로 주주제안을 한 안건과 삼성물산·JB금융지주·금호석유·한미사이언스의 주주제안 안건을 모조리 반대했다"면서 "어떤 근거로 왜 이사회 안이 주주제안보다 장기적인 주주가치에 더 부합한다고 판단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고 비판했다.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국내 자산운용사들 역시 의결권 행사 내역도 상세히 공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포럼과 회원사가 함께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의결권 행사내역을 공시한 자산운용사(주식운용 규모 상위 10곳)들의 주주제안 찬성률은 매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에는 주주제안 찬성률이 60%에 달했는데, 2023년에는 32%, 2024년에는 23%로 줄었다. 반면, 주주제안 안건 반대 및 불행사의 비율은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다. 이에 국민연금과 자산운용사들이 의결권을 성실히 행사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근거도 충실히 공시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게 포럼의 진단이다.

이와 관련, △주주가치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합하는 안건은 의결권을 의무적으로 행사 △의결권 행사내역에 대한 상세근거를 행사 즉시 공시 △자산운용사 뿐 아니라 기업들도 주주의 표결내역을 종합해 공시 등 투자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대안도 함께 제시했다.

포럼은 "특히 이사회 안과 주주제안이 맞붙는 위임장 대결 상황은 일년에 몇 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주요 운용사들이 공시한) 의결권 행사 사유는 불분명하고 부족하다"며 "기관투자자들이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그리고 사려 깊게 행사하는 환경이 조성될 때 진정한 밸류업이 가능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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