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불이행 자영업자 3개월 만에 1.1만명↑
전체 7만명 돌파…최근 5년 중 가장 빠른 속도
“돈 있는 사람만 상환” 1인당 대출액 2조원 육박
60대 이상 채무불이행 자영업자만 5년간 320%↑
“폐업 후 재취업에 한계…고령층 핀셋 대책 필요”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고금리가 장기화하며 대출 이자를 갚지 못해 ‘신용불량(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진 자영업자가 올 1분기에만 1만명 넘게 늘어났다. 이는 집계가 이루어진 최근 5년 새 나타난 가장 빠른 증가세다. 고금리 현상이 장기화하는 데다가 고물가 등 비용 지출도 늘어나며 한계에 직면하는 자영업자들이 급증한 결과다.
특히 60대 이상 고령 자영업자의 채무 부실이 유독 또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폐업 이후 소득을 창출할 만한 뚜렷한 방안을 찾지 못한 가운데, 추가 대출을 통해 사업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 고령층의 1인당 채무액은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고령층에 초점을 맞춘 자영업자 재기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자영업 ‘신용불량자’ 속출…올해 들어 부실 가속화
3일 헤럴드경제가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요청해 받은 NICE평가정보 ‘자영업자 채무불이행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 1분기 말 기준 채무불이행 자영업자(금융권 대출 원리금 90일 이상 연체자)는 7만2815명으로 지난해 말(6만1474명)과 비교해 1만1341명(18%)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9년 말 기준 3만1375명으로 한 해에 3468명(12%)이 늘었던 채무불이행 자영업자는 2020년 말 기준 2만3520명으로 큰 폭 감소한 바 있다. 정부가 코로나19 피해 자영업자 대상으로 대출 만기연장·상환유예 지원을 시작하면서다. 하지만 이후 기준금리 인상이 본격화되며 다시금 증가세가 가속화됐다.
이같은 현상은 올해 들어 더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채무불이행 자영업자는 6만1474명으로 2022년 말(3만3390명)과 비교해 2만8084명(84.1%) 늘었다. 1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불어난 셈이다. 하지만 올해 1분기 채무불이행 자영업자 증가폭(1만1341명)은 지난해 분기 평균(7021명)을 훌쩍 웃돈다. 이 경우 올해 안에 채무불이행 자영업자가 10만명을 넘어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울러 부채 상환 능력 유무에 따른 격차도 극심해지고 있다. 전체 자영업 대출 잔액은 올해 1분기 말 기준 742조5500억원으로 지난해 말(736조8800억원)과 비교해 5조6000억원 늘어났다. 지난해 증가분의 23% 수준이었다. 하지만 채무불이행 자영업자의 대출 잔액은 1분기에만 2조3289억원 늘었다. 이는 지난해 증가분의 43%에 달한다. 전체 대출 잔액은 증가세가 주춤한 반면, 채무 불이행 잔액은 더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자금 여유에 따른 상환 격차가 벌어진 영향이라고 보고 있다. 현금 여유가 있는 자영업자들의 경우 대출을 상환하거나 추가 대출을 받지 않지만, 그 반대의 경우 지속적으로 대출을 실행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채무불이행 자영업자의 1인당 채무잔액은 1분기 말 기준 1억8021만원으로 2억원에 육박했다. 2022년 말과 비교해 2000만원가량 늘어난 수치다.
60대 ‘신용불량’ 자영업자 1인당 채무액만 2.5억원
특히 60대 이상 고령층의 채무 상황 악화 추세가 두드러진다. 60대 이상 채무불이행 자영업자 수는 1분기 말 기준 1만4243명으로 지난해 말(1만1758명)과 비교해 2485명(21.1%) 늘었다. 이는 전 연령대 중 유일하게 20%대의 증가세다. 이 밖에는 ▷50대 19.1%(3328명) ▷40대 18.2%(3423명) ▷30대 16.6%(1770명) 등으로 집계됐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도 60대 이상 고령층의 채무 부실 속도는 남다르다. 2018년 말 기준 3376명이었던 60대 이상 채무불이행 자영업자는 지난 5년간 321%(1만867명) 증가했다. 전체 증가율(160%)보다 두 배 더 높은 수치다. 타 연령대의 경우 ▷50대 163%(1만2883명) ▷40대 125%(1만2345명) ▷30대 111%(6526명) ▷20대 239%(2286명) 등 증가세를 보였다.
개인이 보유한 채무액 규모도 가장 높은 수준이다. 60대 이상 채무불이행 자영업자의 채무액은 평균 2억4700만원으로 전체 평균(1억8000만원)과 비교해 6700만원가량 더 많다. 이 경우 고금리에 따른 이자 비용 부담도 여타 연령대에 비해 높을 수밖에 없다. 타 연령대의 평균 채무액은 ▷50대 2억600만원 ▷40대 1억6800만원 ▷30대 1억700만원 ▷20대 7900만원 등이다.
정부는 자영업자·소상공인 채무조정 프로그램인 ‘새출발기금’을 통해 채무 불이행 자영업자의 상환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60대 이상 고령층의 경우 채무 조정과 폐업을 진행한다 하더라도, 향후 소득 기반을 마련할 여력이 부족하다. 청년층에 비해 재취업 등에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고령 자영업자들이 영업 한계에 직면한 상태에서도 채무를 늘려 사업을 유지하는 것도 이같은 요인이 작용한 결과라는 지적이 꾸준하다.
고령층의 사정을 고려해 자영업자 재기 전략이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성주 의원은 “고령층 자영업자의 채무불이행과 파산이 증가하며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지만, 이들을 대상으로 한 마땅한 해결책은 나오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며 “자영업자들의 사정을 고려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