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0원선 깨진 역대급 엔저에 환차손 부담 커져
엔화 미 국채 20년물 투자 ETF 베팅한 개미들 ‘이중고’
환노출 ETF, 엔저에 수익률 깎이기도
[헤럴드경제=유혜림 기자] 일본 엔화가 34년 만의 최저치를 연일 갈아치우면서 엔화로 된 자산에 투자한 ‘일학개미’들 근심이 커지고 있다. 특히 엔화로 만기 20년 이상의 미국 초장기채에 베팅한 투자자들의 한숨은 더 깊다. 채권 가격 상승과 환차익 모두 챙기는 ‘이중 호재’를 노렸지만 미국의 금리 인하 시점은 점점 미뤄지고 엔저 현상에 환손실까지 더해지면서 ‘이중고’에 시달리는 모습이다.
29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 들어 일본 증시에 직접 투자한 일학개미들이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26일 기준)은 ‘아이셰어즈 미 국채 20년물 엔화 헤지 ETF’로 순매수 규모는 3억5451만달러(약 4887억원)에 이른다. 순매수 2위 역시 ‘아이셰어즈 코어 7-10년 미국채 엔화 헤지 ETF(2887만달러)’라는 점을 감안하면 엔화로 중장기 미국채에 투자하는 상품이 얼마나 큰 인기를 끌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아이셰어즈 미 국채 20년물 엔화 헤지 ETF’는 엔화로 만기 20년 이상의 미국 초장기채에 투자할 수 있는 상품으로 향후 미국의 금리가 내려가면 채권 가격 상승과 더불어 환차익까지 노릴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투자자들이 대거 몰렸다. 하지만 최근 미국 국채금리는 5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찍고 엔화 가치는 34년 만에 최저치(엔화가치 약세)로 떨어지면서 국내 투자자는 환손실까지 추가로 떠안게 됐다.
올해 초 100엔당 원화 환율은 920원을 웃돌다가 2월 말 881원선까지 내리면서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선 엔화를 기초로 한 투자 열풍이 거셌다. 엔화 환율이 바닥을 다졌다는 인식에 환차익을 노린 매수세가 몰린 것이다. ‘엔화 미 국채 20년물 투자 ETF’의 경우, 국내 투자자들은 지난 2월(1억1170만달러)·3월(1억525만달러) 모두 매달 1억달러 넘게 순매수했다. 하지만 지난 26일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동결하자 870선이 깨지면서 환손실 폭을 키우고 있다.
일본 증시에 간접 투자한 투자자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환율 변동에 자산을 노출하는 환노출형 ETF가 대표적이다. 닛케이 평균을 기초지수로 하는 ETF인 ‘TIGER 일본니케이 225’의 연초 이후 수익률은 10.05%로 닛케이 평균의 올해 상승률(14%)에 크게 못 미친다. 주가가 올랐어도 환차손이 생겨 합산 결과, 수익률이 깎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같은 기간 ‘TIGER 일본엔선물’의 수익률은 -4%대를 나타냈다.
일본펀드 수익률도 내림세다.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최근 1개월 간 일본펀드 수익률은 -5.23%를 기록했다. 이 기간 중국펀드(1.24%), 인도펀드(5.58%) 등보다 수익률이 낮았다. 올 들어 13% 넘게 올랐지만 이달 들어 수익률이 꺾이는 모습이다. 4월 들어 ▷KODEX 일본TOPIX100(-323억원) ▷TIGER 일본엔선물(-179억원) ▷ACE 일본반도체(-6억2400만원) 등의 순자산도 줄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은 엔화 약세가 지속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날 오전 장중 엔·달러 환율은 지난 1주일 새 급등(엔화 가치 약세)하며 달러당 160엔 돌파했다. 일본 외환시장의 ‘방어 라인’으로 여겨지던 달러당 155엔선을 돌파, 연일 34년 만의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은행이 엔화 가치 급락에도 불구하고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밝히는 동시에 일본 정부 역시 구두개입 이외에 적극적인 실개입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점이 최근 엔화 약세에 영향을 미쳤다”며 일본은행의 정책 부재 시 엔·달러의 추가 상승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