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값 폭등…뉴욕상업거래소 장중 2300달러선 근접했지만
한국은행 보유액은 2013년 2월 이후 11년째 제자리 걸음
유동성 더 중요…고환율 속 앞으로도 본격 매입 어려워
[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해외 주요국 중앙은행이 금 보유량을 늘리는 가운데, 한국은행의 금 보유량은 10년째 제자리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국제 금값이 최근 연일 사상 최고치를 새로 쓰면서, 한은의 소극적인 금 매입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일 한국은행경제통계시스템(ECOS) 외환보유액 통계에 따르면 금 보유액은 지난 2월 기준 47억9475만9000달러를 기록했다. 2013년 2월(47억9448만6000달러)에서 0.01% 늘었다. 같은 기간 외환보유액은 3273억9534만1000달러에서 4157억2944만3000달러로 26.98% 증가했다. 해당 통계는 장부가 기준으로 금 보유액을 집계한다. 즉, 시세 차이가 반영되지 않았다. 금 보유량이 사실상 변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세계금위원회 보고서를 봐도 한은 금 보유량은 변하지 않았다. 한은은 지난해 말 기준 104.4톤의 금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이후 추가 매입이 없다. 한은은 지난 2011년 40톤, 2012년 30톤, 2013년 20톤의 금을 추가로 사들인 뒤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총량을 유지했다.
반면, 중국 등 주요국은 금을 무섭게 매입하고 있다. 중국의 금 보유량은 2226.4톤으로 세계 6위 수준이다. 지난해 한 해 동안에만 215.9톤의 금을 추가로 사들여 러시아와의 격차를 크게 좁혔다. 폴란드도 지난해 130.0톤을 매입해 순위가 23위에서 단번에 15위로 뛰었다.
이에 한은 금 보유량 순위는 2013년 말 세계 32위에서 2018년 말 33위로 미끄러졌다. 이어 2021년 말 34위, 2022년 말 36위로 추가 하락했다. 보유량 순위 별로 살펴보면 미국이 지난해 말 기준 8133.5톤으로 가장 많았고, 독일(3352.6톤), 이탈리아(2451.8톤), 프랑스(2436.9톤), 러시아(2332.7톤) 등이 뒤를 이었다.
금은 전통적으로 ‘인플레이션 헤지(위험분산) 수단’으로 여겨져왔다. 물가상승으로 인해 화폐 가치가 떨어지는 것과 달리 금은 안정적 가치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물가가 오르면 중앙은행들의 금 수요가 늘고, 이에 따라 금값이 오르면서 자연스레 각국의 외환보유액도 함께 가치가 증가해 외환리스크가 줄어드는 효과도 있다.
실제 금값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1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6월물 금 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18.70달러(0.83%) 오른 온스당 2257.1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 온스당 2300달러선에 근접하기도 했다. 올해 들어 벌써 9%가량 상승한 것이다. 올해 1분기 수익률은 뉴욕증시 우량주인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의 수익률(5.5%)의 두 배 수준에 육박했다.
한은이 금 매입에 소극적인 것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는 이유다. 한은 안팎에선 우리나라 경제의 높은 대외 의존도 등을 꼽고 있다. 환율이 급등한 상황 속에서 언제든 개입할 수 있는 ‘실탄(달러)’을 포기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한은 등 외환당국은 환율이 비이성적으로 급등하면 구두개입과 함께 실개입을 진행해야 하는데, 금은 단기간 유동화가 어렵다. 환율 변동성이 심하면, 적극 활용하기 어려운 편에 속한다.
올해 1월 상황을 보면 이해가 쉽다. 외환당국은 지난 1월 17일 원달러 환율이 연초 대비 50원 이상 급등하자 시장 관리 의지를 드러냈다. 1350원대가 위협 받자 진정에 나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당국의 달러 매도 실개입 추정 물량이 등장했다.
미국과의 관계적 특수성도 봐야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달러를 매입한 중국은 미국과 관계가 악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중 갈등 심화와 맞물려 진영 간 대립이 뚜렷해지는 정치적 상황 속에서 일부러 미국 국채를 내다 팔고 금을 사들이고 있는 모양새다.
폴란드는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지정학적 우려 때문에 매입세가 강화됐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미국과의 관계도 좋고, 지정학적 영향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금을 매입할 유인이 떨어졌던 셈이다.
앞으로도 당분간 한은이 금을 전격 매수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우선 외환보유액이 감소세로 돌아섰다. 1월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4157억6000만달러로, 작년 12월 말(4201억5000만달러)보다 43억9000만달러 감소했다. 환율 상황이 안정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달러가 빠져나간 셈이다. 급작스레 유동화가 어려운 금을 매입하기 힘들다.
금 가격이 이미 상당히 오른 것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한은은 2013년 2월로 20톤을 트로이온스당 약 1600달러에 사들였다. 그러나 직후 금 가격은 폭락을 시작해 2014년엔 1100달러대로 후퇴했다. 이후 2018년까지도 1100~1300달러 사이 횡보세를 나타냈다. 이에 한은은 금을 너무 비싸게 매입해 막대한 손해를 입혔다는 지적에 시달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