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아무래도 공짜로 주니까 쓰게 되더라고요”
30대 직장인 현모 씨는 숙소에서 제공하는 세면도구를 주로 쓰는 편이다. 이달 초 부산으로 출장가서 묵게 된 숙소에는 리필형 샴푸, 일회용 면도기와 칫솔이 구비돼 있었다.
현씨는 “혹시 몰라 여행용 샴푸와 면도기와 칫솔을 챙겨갔지만 객실에 새 것이 있으면 무의식적으로 뜯어 쓰게 된다”며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려면 숙소에서 일회용품을 아예 치워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무료라서 혹은 기념품이라서 등의 이유로 투숙객들의 사랑을 받았던 ‘어메니티’, 이른바 숙박업소의 일회용 세면도구들이 이달 말부터 규제를 받게 된다. 대상이 50실 이상 숙소인 데다 유상 판매도 가능해 일회용품 사용량이 크게 줄어들지 않을 거라는 우려도 나온다.
자원재활용법 개정안이 시행되는 오는 29일부터 50실 이상의 숙소는 일회용품 사용을 억제해야 하며 이를 무상으로 제공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반할 시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동안 집단급식소, 식품접객업, 목욕장업, 체육시설 등에서 일회용품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이 금지됐었는데, 이번에 50실 이상의 숙박업소로 확대됐다. 규제를 받는 일회용품은 칫솔, 치약, 샴푸, 린스, 면도기 등 5 종류다.
지난해 2월 말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예고됐던 일회용품 규제지만, 시행을 앞두고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무상으로 제공하던 일회용품을 자판기 등을 통해 유상으로 판매하는 숙박업소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어서다. 일회용품을 줄이는 효과는 적은데 세면용품을 갖추는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이번 일회용품 규제로 줄어들 쓰레기는 수십만 개에 이른다. 한국호텔업협회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전국에 등록된 숙박시설의 객실 수는 21만7601개, 객실이용률(OCC)는 58.79%다. 여기에 일회용품 5종류를 곱하면 산술적으로 매일 약 64만 개의 일회용품 쓰레기가 줄어드는 셈이다.
숙박업소의 일회용품을 금지하는 건 전세계적 추세다. 미국의 경우 2022년부터 50실 이상 숙박업소에서, 올해부터 모든 숙박업소에서 일회용품 무상 제공을 금지하는 법안이 마련됐다.
우리나라도 50실 미만 숙박업소까지 일회용품 규제를 확대한다면, 일회용품 쓰레기는 배 이상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에 일회용품 규제를 받는 숙박업소는 극히 일부라서다.
통계청의 숙박업 객실 수 규모별 현황에 따르면 일회용품 규제를 받게 될 50실 이상 숙박업소는 전국에 4833개소(2022년 기준)다. 이에 비해 일회용품 규제를 받지 않는 50실 미만 숙박업소는 5만8272개소로 전체 숙박업소(6만3105개소)의 92.3%에 달한다.
무료냐, 유료냐 소모적인 논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일회용품 자체를 줄이려는 숙박업소의 노력도 뒤따라야 한다. 샴푸나 린스 등은 소분하는 대신 디스펜서(대용량 리필용기)를 사용하고, 일회용품 면도기나 칫솔 등의 판매도 자제하는 식이다.
규제 대상이 아닌 일회용품을 줄이는 것도 숙박업소의 몫이다. 생수병 대신 정수기를 이용하게 하거나 물병을 제공하고, 종이컵 대신 유리컵이나 머그컵을 비치하는 걸로 일회용품 쓰레기를 없앨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