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배터리 게이트 이후 7년

2심 재판부 “업데이트 때 설명했어야…7만원 배상”

손해배상 요구할 권리 사라져 어려울듯

“아이폰 업데이트 했더니 버벅인다” 지금 소송하면 7만원 받을 수 있을까?[세모금]
2015년 출시된 아이폰6s[헤럴드DB]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2017년 ‘아이폰 배터리 게이트’를 기억하시나요? 애플이 아이폰6 시리즈와 아이폰7 시리즈 일부 모델이 특정 조건에서 성능이 저하되도록 운영체제(iOS)를 업데이트 했다가 전세계 소비자들로부터 큰 불만을 샀던 사건입니다. 국내에서도 6만명이 넘는 인원이 애플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습니다.

이후 약 7년이 지난 2023년 12월 6일, 국내에서 애플이 소비자에게 7만원씩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물론 아직 판결이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까지 간다면 “애플 잘못 없음”으로 뒤바뀔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당시 업데이트로 불만을 터뜨렸던 소비자라면 2심 재판 결과가 어떤 의미인지, 혹시 7만원을 받을 수 있는지 궁금할 겁니다. 2심 재판부의 논리를 바탕으로 법조계에 의견을 구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애플 배터리 게이트…한국 법원 판단은?

우선 ‘배터리 게이트’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봅시다. 2017년 1월 애플은 운영체제(iOS) 업데이트를 통해 ‘성능 조절 기능’을 도입했습니다. 아이폰 전원이 갑자기 꺼지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특정 조건 하에서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의 성능이 떨어지도록 했습니다. 배터리가 지나치게 오래됐거나 배터리 충전량이 낮거나 기온이 지나치게 낮은 상황 등에서 작동합니다. 성능 조절 기능이 켜지면 앱이 잘 실행되지 않고, 버벅거리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물론 배터리를 교체·충전하는 등 조건이 바뀌면 성능 조절 기능은 꺼집니다.

문제는 소비자가 불편할 수 있는 업데이트인데도 애플이 이러한 내용을 따로 설명하지 않은데서 발생했습니다. 배터리가 낡거나 충전이 안된 상황에도 ‘최고 성능’으로 아이폰을 사용하고 싶은 소비자들의 불만을 샀습니다. 배터리 유상 교체를 유도하려는 상술 아니냐는 주장도 있었지요. 논란이 커지자 애플은 2017년 12월, 2018년 1월과 4월에 자세한 내용을 담은 공지를 배포했습니다.

애플 아이폰6플러스[연합]

애플의 뒤늦은 조치를 두고 한국 뿐만 아니라 미국, 이탈리아, 프랑스 등 전세계에서 법적 분쟁이 벌어졌습니다. 애플은 2020년 소송을 제기한 미국 소비자들과 배터리 무상 교체 및 우리 돈 약 3만원(미화 25달러) 지급에 합의했습니다. 이탈리아의 공정거래위원회(AGCM)과 프랑스 경쟁소비부정행위방지국(DGCCRF)는 소비자법 위반 이유로 벌금을 부과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소비자 6만여명 또한 소송을 걸었고 올해 2월 1심 판단이 나왔습니다. 결과는 애플의 승리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6일 치러진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서울고등법원 민사12-3부(부장 박형준, 윤종구, 권순형)는 아이폰 6·7 시리즈 사용자 7명이 애플 미국 본사(애플인코퍼레이티드)와 애플 한국 본사(애플코리아 유한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재판부는 애플 본사에 1인당 7만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죠. 이유는 애플이 소비자에게 고지해야 할 의무를 져버렸고, 이로 인해 소비자들에게 정신적 피해를 입혔기 때문이었습니다.

2심 재판부는 “사용자는 업데이트가 일반적으로 성능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아이폰 성능을 제한하는 것이었다면 소비자들에게 업데이트를 설치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할 의무가 있다”며 “애플은 이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원고(사용자)의 선택권,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기회를 상실했다”고 했습니다. 다만 애플 한국 본사에 대해서는 하드웨어를 판매하는 당사자로서 업데이트에 대한 고지 의무가 없다고 봤습니다.

7만원씩 배상…누가 받을 수 있을까?

[헤럴드DB]

일단 지난 2월에 나온 1심 결과를 보고 항소하지 않은 소비자들은 안타깝게도 배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항소 포기로 1심 판결이 ‘확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2심까지 진행한 소비자는 단 7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1심 소송에 참여하지 않았던 소비자들은 어떨까요? 역시나 어려울 것 같습니다. 2심 재판부는 애플이 소비자와 맺은 계약을 위반(채무불이행)했다는 점을 배상 근거로 들었습니다. 물건 판매 계약이기 때문에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이 5년으로 제한됩니다. 어렵지만 정확한 말로 하자면 “상사 채권(상행위로 발생하는 권리)의 소멸 시효인 5년이 지나서 받을 수 없다”입니다.

손해배상 청구 가능 기간은 ‘손해를 안 날’로부터 5년 이내인데요. 아이폰 배터리 게이트의 경우 업데이트가 이루어진 2017년 1월 23일부터 애플이 성능 조절기능에 대해 뒤늦게 공지한 2018년 4월 4일 사이를 ‘손해를 안 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늦게 잡아도 5년이 지났습니다. 다만 ‘손해를 안 날’을 2심 재판이 이뤄진 2023년 12월 6일이나 판결이 확정되는 때로 잡을 수도 있다는 소수 의견도 있었습니다.

소비자 고지 의무 위반 손해배상 유의미

애플 아이폰15 시리즈 국내 공식 출시일인 13일 서울 중구 명동 애플스토어에서 고객들이 입장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임세준 기자

이쯤 되니 “에이, 돈 못 받는 판결이면 의미가 있나?”하는 독자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스마트폰 이용자와 스마트폰 제조 및 판매사 간에 체결된 소프트웨어 이용계약 부수의무로서, 업데이트로 생길 수 있는 변화 고지 및 설명의무를 법원이 명시적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그동안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업데이트 과정에서 이용자들에게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용자들은 업데이트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 채 업데이트를 받는 경우가 꽤 빈번했죠.

한 변호사는 “고지 및 설명의무 위반이 손해배상책임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이 법원에 의해 확인됐다. 이후 업계의 잘못된 관행에 제동을 걸고 소비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습니다. 스마트워치, 무선이어폰 등 다른 기기는 물론 업데이트가 빈번한 구글, 넷플릭스 등 IT 서비스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애플의 통 큰 조치를 기대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소송과 별개로 소비자 구제 방안을 내놓기를 바라는 것이죠. 이번 소송을 진행한 김주영 법무법인 한누리 변호사는 “애플의 업데이트 관련해서 법원이 직접 판결을 내린 것은 한국이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애플이 전향적으로 아이폰 고객들에게 금전적 책임을 다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