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금리·비이자이익 압박이 부른 홍콩ELS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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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홍승희 기자] “은행 직원조차도 무슨 상품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어머니가 8800만원을 넣으셨는데, 예적금 하나 없이 ELS 2개·투자상품 3개로 가입돼있더라고요. 은행 부지점장 말만 믿고 넣은건데…”(금융소비자 A씨)

내년 상반기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의 수조원대 원금 손실이 예상돼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일부 금융소비자들은 은행이 복잡한 구조의 파생상품을 고령의 고객들에 “예·적금같이 안전하다”고 속여 팔았다며 불완전판매의 가능성을 주장하고 있다. 일각에선 ELS가 이토록 많이 판매된 원인으로 초저금리 시대와 은행권에 가해진 비이자이익 실적 압박 등을 지적한다.

‘홍콩 ELS’ 뭐길래

ELS란 개별 주식 가격이나 주가지수 움직임에 따라 손익이 결정되는 금융상품이다. 주가 또는 지수가 떨어지거나 올라도 미리 정해진 구간 안에서만 움직이면 약정한 수익률을 지급받을 수 있다. 원금손실구간은 대부분 기준가의 50~55%에서 형성되고, 만기는 3년 이하다. 주가지수가 손실구간 밑으로 한 번이라도 내려가면 손해를 보는 ‘녹인’ 상품과 만기시점의 주가로만 평가하는 ‘노(No)녹인’ 상품으로 구분된다.

지난 2019년 11월 금융위원회는 사모펀드 사태 이후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 보호 강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은행의 사모펀드·신탁 판매를 금지하려고 했다. 이에 은행이 반발하자, 금융당국은 공모로 발행된 주가연계신탁(ELT)에 한해 파생상품 판매를 허용했다. 이에 은행들이 ELS를 ELT의 형태로 취급하기 시작한 것이 이번 ‘홍콩H지수 편입 ELS 사태’의 시발점이 됐다.

[연합]

홍콩H지수는 홍콩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우량 중국 국영기업 50개로 구성된 주식 지수다.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시중은행과 외국계은행에서 판매한 H지수 편입 ELS 관련 상품은 지난 8월 말 기준 16조원이 넘는다. 이중 상반기 만기 도래액이 7조5853억원이다. 이중 손실구간인 ‘녹인’ 구간에 들어온 잔액이 4조6000억원이다.

홍콩H지수는 지난 2021년 기준으로 1만2000선을 넘어섰으나, 그해 말 8000대까지 떨어졌고 현재 5000대를 기록하고 있다. 2020년 말부터 2021년 초 출시된 녹인 상품의 경우 손실이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당시 예금금리 1.09%…‘초저금리’가 신탁상품 판매 원인?

은행에서 수조원 잔액의 ELS 상품을 취급하게 된 데에는 초저금리 시기, 비이자이익 압박 등의 원인이 존재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홍콩H지수가 최고치를 찍었던 지난 2021년, 전 세계적으로는 기준금리가 ‘제로(0)’에 수렴하던 때라 예·적금 등의 금리는 터무니 없이 낮았다.

실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021년 1월부터 12월까지 예금은행의 수신금리는 1.09~1.78%에 해당했다. 은행권으로선 수익률이 연 6~10%, 최고는 13%까지 가능한 ELS 상품을 판매하는 게 더 나은 선택지었던 셈이다.

[뉴시스]

은행권을 향한 비이자이익 압박이 수수료를 벌 수 있는 파생상품 판매를 부추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2021년 초 일부 시중은행은 펀드, 파생상품, 방카, 신탁, 카드, 주택기금, 외국환 등의 상품을 판매해 거둬들이는 핵심비이자수익을 직접적으로 핵심성과지표(KPI)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저금리가 장기화되고 순이자마진(NIM)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수익성 하락을 방어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한 은행원은 “은행에 비이자 수익을 강요하면 안되는 게 ELS와 같은 사례 때문”이라며 “애초에 은행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고객들은 원금 보장상품을 원하는 ‘안전추구형’인데 회사에서 실적을 요구하니 아무것도 모르는 고객들을 권유해 파생상품을 팔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은행권의 ‘불완전판매’ 여부를 살펴보기 위해 홍콩H지수편입 ELS 판매 건에 대해 전수조사를 진행 중이다. 단 은행권은 2019년 사모펀드·해외 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이후 이미 완전 판매를 위한 과정이 강화돼있었다고 주장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파생상품 판매시 자필 서명-녹취-해피콜 등 3단계에 걸친 필수 과정이 기본으로 적용됐기 때문에 불완전판매 입증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