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회사채 금리 올라 대출 늘어날 것”
채권시장 긴장 고조…당국 모니터링 강화
[헤럴드경제=문혜현 기자] 기업대출 잔액이 한 달 새 9조원 가까이 늘어나는 등 9개월 연속 증가세를 기록하면서 은행으로 자금 쏠림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회사채 금리가 오르면서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은행 문을 두드리고 있는데, 기업대출 확대를 위해 은행이 은행채를 발행하면 회사채 금리를 다시 밀어올리는 악순환이 벌어진다는 이야기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주요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9월 말 기준 기업대출(대기업+중소기업) 잔액은 756조3309억원으로, 8월 말(747조4893억원)과 비교하면 한 달 만에 8조8416억원 증가했다. 은행 기업대출은 9개월 연속 증가세로, 지난해 12월 말(703조6747억원)보다 52조원 넘게 급증했다.
이는 은행이 수익성 강화를 위해 기업대출 경쟁을 벌인 영향이다.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기업대출 금리를 낮추는 등 영업을 강화한 것이다. 이에 더해 미국의 긴축 기조 장기화 가능성에 회사채 금리가 뛰면서 기업들은 회사채 발행보다는 은행 대출을 더 선호하게 됐다.
이에 금융당국은 주요은행 등에 대출 외형 확대 자제를 당부했지만 기업대출 증가세는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기업대출 수요가 계속 있다보니 은행이 인위적으로 기업대출을 막진 않을 것”이라며 “최근 시장 상황도 불안해져 기업대출 증가폭이 줄긴 어렵다”고 말했다.
문제는 기업대출 증가세가 은행채 발행을 부추겨 지난해 말과 같은 채권시장 자금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은행은 은행채 발행 또는 예·적금 등 수신고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데, 이번 4분기부터 만기 도래분의 125%였던 은행채 발행 제한이 풀려 예금 금리 경쟁을 줄이고 은행채 발행을 늘릴 수 있게 됐다.
은행 입장에선 이자 비용이 드는 고금리 예금 확대보다는 은행채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이 더 편리한 셈이다.
앞서 금융당국은 지난해 채권시장 자금경색 사태 당시 은행채 발행을 제한한 바 있다. 시장선호도가 큰 은행채가 발행될수록 회사채 금리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회사채 금리가 높아지면 기업은 은행 대출에 의존하게 되고, 은행은 자금 수요를 소화하기 위해 또 은행채를 발행하면서 채권시장 유동성이 줄어들게 된다.
은행권 관계자는 “신용도가 높은 은행채가 회사채보다 안정적이다보니 시장 수요가 몰릴 것”이라며 “기업 유동성이 은행 대출로 채워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우선 상황을 지켜보면서 필요시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5일 “국내 자금시장에서의 수급 동향, 금리, 스프레드, 만기도래액 및 차환율, 프로젝트파이낸싱(PF)-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양도성 예금 증서(CD) 등 단기자금시장 동향 등의 일일 점검체계를 강화하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