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금리가 주담대 금리 역전

3월 이후 생활안정자금 목적 주담대 두 배 급증

'고금리 예금'이 대출 자극…빚투 활용 우려

서울 한 저축은행의 예금 안내문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연합]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 최근 한 인터넷은행서 연 3.88% 금리로 9800만원가량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A씨는 추가 대출을 고민하고 있다. 당장 자금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대출금리 수준이 생각보다 낮다는 이유에서다. A씨는 “대출을 최대한으로 받아 4~5%대 예금에 넣으면, 최대 1%가 넘는 차익을 얻을 수 있어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 은행원 B씨는 최근 50년 만기 주담대 판매가 종료될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한 뒤, 부랴부랴 8000만원의 대출을 받았다. 목적은 현금 확보다. 그는 “일단 안전하게 예금으로 시작한 뒤, 향후 주식 등 투자에도 사용할 계획”이라며 “청약을 넣지 못하는 등 다소 걸림돌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갚지 않는 게 이득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근 예금금리 경쟁이 다시금 고개를 들면서 일부 예금금리가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웃도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신규 대출금으로 예금에 가입해 차익을 얻거나, 대출 상환을 미루고 예금 수익을 얻는 사례가 늘고 있다. 높아지는 대출 문턱에 따라 미리 현금을 확보해두려는 수요를 고금리 예금이 뒷받침하고 있다는 얘기다. 향후 전반적인 예금금리 상승 전망도 나오고 있어 ‘영끌’ 현상이 가계대출 확대를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단 현금 챙기고 보자”…저금리 대출에 ‘현금성’ 주담대 수요↑

서울 한 부동산중개사무소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연합]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5대 은행의 주담대 잔액은 514조9997억원으로 지난 6월 말(511조4700억원)과 비교해 3조5990억원 상승했다. 같은 기간 인터넷은행 주담대도 2조원가량 증가하며, 가계대출 확대 추세를 이끌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부동산 시장 활황과 함께 저금리 주담대 판매가 이루어지며, 주택구입 수요가 늘어난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직접적인 부동산 구입 자금 외에도 주담대를 이용한 무분별한 현금성 대출이 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생활비 등 기타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생활안정자금’ 목적의 주담대를 받아 고금리 예금 등 투자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애초 생활안정자금 목적 주담대는 건당 2억원의 한도 규제가 적용됐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지난 3월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며 해당 한도를 폐지하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범위 내에서 대출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이후 생활안정자금 대출 규모가 크게 늘었다. 금융위에 따르면 5대 은행의 주택구입 외 목적 주담대 신규취급액은 지난 2월까지 4조원대에 불과했으나, 3월 이후 7~8조원대로 두 배가량 급증했다.

최근 가계대출 확산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된 50년 만기 주담대의 경우 그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지난달 14일까지 취급된 KB국민·신한·하나·NH농협 등 시중은행 4곳의 50년 만기 주담대 중 생활안정자금 및 기타 용도의 취급 건수는 3912건으로 주택구입 용도(2440건)을 훌쩍 뛰어넘었다. 한 시중은행서는 생활안정자금 용도의 주담대 취급 건수가 주택구입 용도의 3배를 넘어서기도 했다.

‘고금리 예금’이 대출 자극해…“‘빚투’로 활용될 우려도”

서울 한 시중은행의 대출 안내문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연합]

은행권에서는 이같은 ‘영끌’ 현상이 나타난 데는 고금리 예금 상품의 영향이 크다고 보고 있다. 대출금을 예금에 넣는 것만으로 이자를 상쇄하는 안정적 수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5대 은행의 고정형 주담대 금리는 3.79~6.203%로 하단이 3%대에 머물러 있다. 반면 1금융권 예금금리의 경우 속속 4%대가 등장하고 있다. 저축은행 등에서는 4%대 금리가 일반적이며, 새마을금고 등에서는 5% 후반대 특판예금도 판매되는 등 대출 요인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실제 자금이 필요해 대출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최근 50년 만기 주담대 등의 경우 일단 현금을 쟁여놓자는 식의 수요가 있었던 것 같다”며 “주식시장이 뚜렷하게 활황을 띄지 않고 있는 상황에 대출금을 예금에 넣는 것만으로 최소한 현상 유지를 할 수 있으니, 대출 유인을 자극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은행권 예금 잔액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달 말 기준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844조9671억원으로 전월(832조9812억원)과 비교해 11조9859억원가량 늘었다. 5대 은행 정기예금에는 지난 7월에도 약 10조원이 넘는 금액이 새로 몰린 바 있다.

일각에서는 하반기 금융권의 예금 경쟁이 치열해지면 ‘영끌’ 현상이 더 거세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권에서는 9월 이후 연말까지 도래할 예금 만기 규모가 100조원을 넘길 것으로 추산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 최대 5%를 넘나드는 예금이 수요를 끌어모은 영향이다. 이 경우 고객 재유치를 위한 경쟁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도 과도한 수신 경쟁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말 금융시장점검회의에서 “가계대출 확대·고금리 특판예금 취급 등 외형경쟁을 자제하고 연체율 등 자산건전성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받아 당장 안정적인 예금 투자를 하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을 수 있으나, 자금이 향후 주식 등 ‘빚투’로 활용될 여지가 있다는 것도 문제”라며 “주담대의 경우 상환 계획에 따라 중도상환수수료 등을 부담해야 할 수도 있으니, 소비자들의 신중한 판단이 요구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