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견제 전략적 밀착 과시

유럽-아시아 갈등 연계…美 안보 전략 ‘복잡’

러시아를 방문 중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3일(현지시간)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상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4일 보도했다. [연합]
러시아를 방문 중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3일(현지시간)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상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4일 보도했다. [연합]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4년 5개월 만에 만나 양국 간 군사 협력을 강화하기로 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북핵 문제를 둘러싼 셈법이 복잡해졌다.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약 4시간에 걸쳐 회담하면서 양국의 전략적 밀착을 과시했다. 미국 등 서방에 대해서는 ‘제국주의’, ‘악’으로 칭하며 공동 전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정상회담이 비공개로 진행된 데다 종료 후 기자회견이 없었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내용의 대화가 오갔는지, 무기 거래나 군사 기술 교류와 관련해 어떤 합의가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확인된 바는 아직 없다.

특히 정상회담 이전 서방에서 우려했던 양국 간 무기 거래에 대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물론 이웃 국가로서 공개되거나 발표되서는 안 되는 민감한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다”며 에둘러 말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 내 전문가들은 상당 기간 회담 내용이 비밀에 부쳐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러시아과학원 산하 아시아연구소의 알렉산더 보론초프 연구원은 “발표된 공식 회담 결과가 매우 간단하다는 데에서 협상의 주요 부분이 ‘폐쇄모드’로 이뤄졌다는 점을 알 수 있다”면서 “대부분의 합의 내용이 당분간 비밀로 유지될 것이고 가정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회담 전후 양 정상의 발언을 꿰맞춰보면 우크라이나전에 필요한 탄약 지원 등 북한의 대러 무기 지원과 러시아의 인공위성 기술 전수 등 일련의 거래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북한의 인공위성 제작을 도울 것인지 묻는 자국 언론 질문에 “우리는 이 때문에 이곳(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 왔다. 북한 지도자는 로켓 기술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고, 그들은 우주를 개발하려 하고 있다”고 답했다.

군사기술 협력 문제에 대해서도 “서두르지 않고 모든 문제에 대해 얘기할 것이다. 시간은 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러시아의 첨단 우주기술에 큰 관심을 표했다. 그는 보스토치니 우주기지 방명록에 “첫 우주정복자들을 낳은 로씨야(러시아)의 영광은 불멸할 것이다”라고 적은 뒤 푸틴 대통령과 최신 ‘안가라’ 로켓 조립·시험동과 ‘소유즈2’ 우주로켓 발사 시설 등을 둘러봤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빅터 차 아시아 담당 부소장 겸 한국석좌와 엘런 김 한국 담당 선임연구원의 공동 분석 글을 통해 “푸틴은 좀더 강력하고 생존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하도록 북한을 지원함으로써 한국과 함께 한반도에서 확장억제력을 강화하려는 미국의 노력을 더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제공받을 것으로 보이는 대상으로 ▷식량과 에너지 ▷군사위성 기술 ▷핵추진 잠수함 기술 ▷고체연료 및 대항체(countermeasure) 등 ICBM 관련 기술 등을 거론했다.

실제로 러시아가 ICBM 관련 기술을 북한에 지원할 경우 이는 러시아가 찬성했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를 스스로 위반하는 결과다.

한편 김 위원장이 서방에 맞서 러시아를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점은 탄약 지원 등 무기 거래 가능성을 암시한다.

정상회담 전 모두발언에서 그는 “러시아는 러시아에 반대하는 패권 세력에 맞서 주권과 안보를 수호하기 위한 성스러운 싸움에 나섰다”며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고 주권 국가를 건설하는 데 항상 함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회담 후 공식 만찬에서도 김 위원장은 서방에 대한 적개심과 서방과 대립하는 러시아에 대한 지지를 드러냈다. 그는 “우리는 패권을 주장하고 팽창주의자의 환상을 키우는 악의 결집을 벌하고 안정적인 발전 환경을 만들기 위해 신성한 투쟁을 벌이는 러시아군과 국민이 분명히 위대한 승리를 거둘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우리나라의 최우선 순위는 러시아와의 관계”라고 강조했다.

회담을 통한 합의 내용이 공개 되지 않은 만큼 미국 정부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북러 간 무기 거래에 대해 강하게 경고했다.

존 커비 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이날 “만약 그들이 일종의 무기 거래를 추진하기로 결정하면 우리는 분명 그에 대해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거듭 밝혔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역시 한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북한과 러시아의 공조는 명백히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며 “우리는 응분의 책임과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북한과 러시아가 미국에 대응해 전략적 차원에서 공조를 강화할 경우 우크라이나 전쟁과 북핵 문제를 동시에 대응해야 하는 미국과 한국 등 서방 입장에서는 대응책 마련에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빅터 차 한국석좌와 엘런 김 선임연구원은 “김정은과 푸틴은 무기 및 잠재적인 전략 무기기술 관련 협력을 통해 유럽과 아시아의 ‘소동(theater)’을 연계해 바이든 대통령의 안보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기뻐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이 러시아에 군수품을 공급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장기화할 경우 미국은 한반도 뿐 아니라 우크라이나에서 곤경에 처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러시아가 북한이 더 강력하고 생존성이 높은 ICBM을 개발하도록 지원하면 한반도에서 확장 억지력을 강화하려는 미국의 노력을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이코노미스트 지는 “서방 입장에서 러시아나 북한에 대한 추가 제재는 거의 효과가 없을 것”이라며 “대신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스스로 방어할 수 있도록 군사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북핵문제에 대해서는 “미국의 핵우산이 아시아 동맹국을 보호하고 있다는 점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why37@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