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114건 증권 집단 소송 제기

소송 절반 이상 기각에도 부정여론 피해 막심

美 새내기 상장기업 골머리…IPO 후 주가 하락시 걸핏하면 집단소송 [투자360]
[게티이미지]

[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 미국 내 상장 기업들이 주가 하락에 따른 투자 손해를 보전하라는 주주들의 무분별한 집단소송의 여파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실리콘밸리 은행 파산으로 인한 증시위축 속에 기업공개(IPO) 직후 1년 안에 주가 하락을 이유로 소송을 당한 기업이 최근 3년간 80개가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또 미국에선 집단 소송의 절반 이상이 기각됨에도 불구, 부정 여론에 따른 주가 하락 손실 등 피해가 적지 않은게 사실이다. 반면 한국은 최근 수년간 국내 신규 상장 기업들의 주가 폭락세 속에서도 집단 소송이 활성화되지 않아 미국과 한국 실정이 큰 차이라는 지적이다.

美 새내기 상장기업 골머리…IPO 후 주가 하락시 걸핏하면 집단소송 [투자360]

▶집단소송 타깃 20%는 IPO 1년 안된 상장사=최근 미국 증권가에선 상장 1년도 되지 않은 기업들이 집단소송의 표적이 되고 있다. 미국 보험 컨설팅사 우드러프 소이어에 따르면, 지난 2020~2022년간 미국 증시에 상장 직후 1년 안에 주가가 하락했다는 이유로 집단 증권 소송을 당한 신규 상장사는 83개사에 달했다. 매해 전체 집단 증권 소송 가운데 신규 상장사가 소송 당하는 비중은 2020년 14%에서 지난해 21%로 올랐다.

우드러프 소이어는 “신규 상장사는 집단소송의 핵심 타깃으로, 상장 이후 주가가 떨어진 기업들이 통상 1년 안에 겪는 문제”라며 “테크주는 다른 업종보다 변동성이 있어 자연스럽게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보험 중개사 알티스페셜티의 케빈 라크록스 부사장은 "역사적으로 매년 IPO 기업 가운데 소송을 당한 기업 수는 20%에 이르고 있으며, 특히 상장 후 공모가보다 20% 이상 하락한 기업들의 소송 제기 건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또 IPO기업들이 ‘현금 많은 기업’으로 분류돼 불법이나 기만과 무관하게 소송 타깃으로 삼는 경향이 많다는 업계 관측도 있다.

미국 이벤트 티케팅 회사인 이븐브라이트는 2018년 상장 이후 7 개월만에 주주들이 집단 소송을 제기했고, 공유차량 기업인 리프트는 상장 이후 단 17일만에 소송을 당한 적이 있다. 상장 서류(S1)에 전동자전거의 안전성에 대한 정보가 누락됐다는 이유에서였다. 미 플로리라대 제이 리터 재무학 교수는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 영향으로 여러 상장 테크 기업들이 주가 하락을 피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집단소송이 재판에 이르는 경우는 많지 않다. 스탠퍼드대 분석에 따르면 1996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미국 상장기업들에 대한 집단 증권소송은 6428건이었고 재판에도 이르지 못하고 각하(dismiss)된 경우는 절반 이상(53%)이었다.

집단소송을 제기하려는 투자자들은 법원에서 허가를 받아야 재판에 이를 수 있는데, 법원으로부터 애시당초 허가조차 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IPO와 관련한 소송도 각하된 경우가 50%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령 지난 2021년 7월 상장한 전자상거래 리스크관리 플랫폼 리스크파이드에 대해 투자자들이 “기업공시 서류에 클라이언트 리스크 관리에 관한 내용이 부실했다”는 이유로 집단소송을 제기했지만, 미국 연방 법원은 지난 6월 “IPO 공시 내용이 탄탄했다”며 기각 결정을 내렸다.

미국 인기 주식중개플랫폼 로빈후드가 지난 2021년 초 게임스톱 등 일부 종목에 대해 거래를 제한하자, 투자자들은 “주가가 급등하는 가운데 주식 거래 제한으로 투자 손실을 봤다”며 집단소송을 제기했지만 기각됐다. 당시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 로빈후드 집단소송을 위해 2만명이 모여 대화방을 만드는 등 화제였다. 그러나 월스트리트 저널은 “법원은 로빈후드 투자고객이 이미 거래 제한 등에 동의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했다.

▶넷플릭스, 우버 등도 집단소송 휘말려=올 들어서도 미국 증권가에선 집단 소송 열풍이 식지 않고 있다. 최근 미 스탠퍼드대 로스쿨 증권집단 소송 정보센터(SCAC)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나스닥·뉴욕증시 등에 상장한 기업들에 대해 114건의 증권 집단 소송이 제기됐다.

지난해 하반기(93건) 보다 23% 증가한 수치다. 집단 소송 제기에 따른 손실 액수도 천문학적이다. 스탠퍼드대에 따르면, 집단소송으로 인한 기업들의 최대손실금액(MDL·소송 기간 중 자본시장에 거래된 피고회사의 자산가치 하락)은 올 상반기 2조2450억달러(2955조원)으로 조사됐다. 반기 기준 역대 최대다. 소송의 진위를 가리기도 전에 주가 하락 여파로 시가총액 손실을 입은 기업들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미국에서 주가 하락에 따른 집단 소송은 거의 언제나 동반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대표적으로 넷플릭스는 지난해 ‘가입자 관련 정보를 숨겼다’는 이유로 집단소송에 직면했다. 소송이 제기된 지난 5월 넷플릭스 주가는 지난해 전년 11월 고점 대비 67% 하락한 226달러를 기록했다. 차량공유기업 우버과 리비안 등 상장기업들도 집단소송이 제기된 상태다. 가천대 법학 저널 분석을 보면, 지난 2021년 기준 미국 상장사 13곳 중 1곳이 집단소송을 당했고, 2017~2021년간 전체 상장법인 대비 피소율은 7.4%였다.

법조계 관계자는 “주가 하락을 기업의 책임으로만 몰기엔 물가상승이나 경기둔화 요인이 적지 않기 때문에 대외 변수를 외면한 채 기업의 경영 부실만이 주가 하락의 원인이라는 상관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미국의 수많은 로펌들이 특정 기업을 타깃해 “집단소송에 참여할 투자자를 모집한다”며 홍보 마케팅에 열을 올리지만 기업 실적 개선으로 주가가 회복세를 보여도 외면하는 경우도 많다.

해외와 달리 국내 상장사는 주가 폭락에도 집단소송 제도의 표적이 되는 경우가 드물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증권집단소송 제도는 2005년 도입 후 증권집단 소송 제기 건수는 10건으로, 연간 0.7건에 불과하다. 일각에선 주가가 수년간 폭락한 국내 신규 상장사들이 미국 투자 소송 문화에 영향을 받을 경우 지금보다 훨씬 많은 집단소송에 직면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공시플랫폼 카인드(Kind) 자료를 보면 지난 2020년 9월부터 올 8월까지 3년간 코스피에 상장한 기업은 30곳으로 상장 당일 종가와 비교해 주가가 지난달 말 하락한 기업은 83%였다. 50% 이상 하락한 기업도 12곳(40%)으로, 70% 하락을 보인 곳도 적지 않다. 지난해 국내 증권시장 시가총액은 전년과 비교해 578조원 쪼그라든 2649조원을 기록했다.

美 새내기 상장기업 골머리…IPO 후 주가 하락시 걸핏하면 집단소송 [투자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