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펀드 환매의혹 특별검사 결과
위법여부 애매한데 정치인 언급해
尹측근 금감원장 총선출마說 여전
前정권 겨냥 정치행위로 오해될수
피해자 처벌·제재·보상 아직 부진
진실규명 중요, 명확한 증거 필요
역사에는 명검(名劍) 이야기들이 꽤 많이 등장한다. 검은 힘과 권력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명검들의 공통된 특징은 예리함이다. 검이 충분히 날카롭지 못하면 상대에 고통만 준다. 검술이 아닌 고문이 된다. 권력이 예리하지 못하면 정치가 어지러워져 백성들이 고통을 받게 된다.
장자(莊子)는 3가지 보검(寶劍) 함광(含光), 승영(承影), 소련(宵鍊)을 소개한다. 베여도 느낌, 고통, 출혈이 없는 게 특징이다. 순자(荀子)는 명검이라도 표면을 매끄럽게 하고(剝脫) 숫돌에 갈아야(砥厲) 상대를 한 번(忽然)에 벨 수 있다고 했다. 일본 사무라이가 할복(割腹)을 할 때 뒤에서 단 칼로 고통을 줄여주는 카이샤쿠(介錯)에는 가장 날이 잘 선 칼을 사용한다.
검사(檢事)의 수사나, 금융당국의 검사(檢査)는 모두 국민을 상대로 한 국가권력의 실행이다. 검사(劍士)의 예리함이 필요하다.
2019년 10월 라임자산운용이 자사 펀드들의 환매중단을 선언하기 한 달 전 4개 펀드의 일부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돌려 받았다. 판매사인 미래에셋증권이 환매를 권유했고 투자자들이 이에 따라 환매를 청구했다. 2023년 8월24일 금융감독원이 이들 4개 펀드의 환매를 ‘특혜성’이라고 밝혔다. 라임운용 회사 자금과 다른 펀드가 이들 4개 펀드에 투자했고 그 돈이 환매자금이 됐다는 판단이다. 환매 관련 자본시장법의 기본 원칙은 이렇다.
“투자자는 언제든지 집합투자증권의 환매를 청구할 수 있다” (자본시장법 235조 1항)
“(환매가격은) 환매청구일 후에 산정되는 기준가격으로 하여야 한다”(자본시장법 236조 1항)
“투자자가 환매청구를 한 날부터 15일 이내에 집합투자규약에서 정한 환매일이 환매대금을 지급하여야 한다”(자본시장법 235조 4항)
4개 펀드에서 환매를 받은 29명의 투자자 가운데는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이 포함돼 있었다. 금감원 발표 이후 김 의원 측은 조기환매가 가능한 개방형펀드에서 정상적으로 환매를 요구한 결과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자 금감원은 8월27일 추가자료를 통해 ‘특혜가 제공된 것이라는 합리적 의구심’을 제기한 이유를 설명했다.
판매사의 권유에 따라 투자자들이 환매하는 것은 적법한 절차다. 살필 부분은 환매자금을 마련한 과정이다. 자본시장법 235조 5항에 따라 환매 대금은 집합투자재산의 범위에서 집합투자재산으로 소유 중인 금전 또는 집합투자재산을 처분하여 조성한 금전으로만 마련해야 한다. 집합투자재산을 넘어 집합투자기구의 재산으로 환매자금을 마련하려면 집합투자기구 투자자 전원의 동의가 필요하다.
논란의 4개 펀드는 235조 5항에 따라 환매자금 마련을 위해 보유자산을 팔았는데, 이 중 일부를 라임운용 회사 자산과 회사 내 다른 펀드가 투자형식으로 매입했다. 235조 6항은 환매가 청구된 집합투자증권을 운용사 고유자산이나 타인이 취득하는 것을 막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환매가 청구된 ‘증권’을 직접 매입하는 경우다. 집합투자재산에까지 적용하기 애매하다.
사모펀드는 특정시점까지는 현금화가 어려운 자산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 급히 팔면 제값을 받기 어려워 환매 탓에 환매청구를 하지 않은 투자자까지 손실을 입을 수 있다. 이 때문에 235조 6항은 투자자가 금액기준으로 환매를 청구했고, 이에 따라 규약에서 정한 환매가격으로 정해진 환매일에 불가피하게 매수하는 경우는 운용사 고유자산이나 타인의 증권 취득을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235조 5항 위반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 부과가 가능하다. 일단 4개 펀드가 자산을 매매하는 형식으로 자금을 마련했다면 5항을 정면으로 위반했다고 보기 애매하다. 회사 고유자산과 타인에게 팔아 환매자금을 마련하지 못하게 한 6항 위반은 별도의 처벌조항이 없다. 라임펀드는 사모펀드다. 자본시장법(249조의 8)에는 사모집합투자기구에 235조는 적용하지 않는다는 특례조항도 있다.
금감원은 23일 발표에서는 특혜성 환매가 있었다는 사실만 공개했다. 2019년 9월 31개 라임펀드 에서 3069억원의 환매가 이뤄진 사실은 27일에야 공개한다. 라임운용의 환매 중단 직전 이뤄진 환매 규모 대비 금감원이 ‘특혜성 돌려막기’로 판단한 펀드의 수와 액수는 그리 크지 않다. 논란의 4개 펀드 외에도 당시 이미 문제를 인지한 투자자들이 상당했다는 뜻이다. ‘특혜’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읽힐 수도 있다. 환매 중단 이후 환매를 받지 못한 투자자가 여전히 많아 안타깝지만, 환매 청구를 하지 않은 결과이니 어쩔 수 없다.
미래에셋 출신인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은 29일 펀드 판매사의 역할과 관련해 "판매한 상품의 숨은 리스크가 무엇인지 항상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감지가 됐다면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로서 (펀드에서 돈을) 빼라고 하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검찰 수사에서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밝혀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상적으로 환매를 권유한 미래에셋증권에 대해서는 특별검사에 들어갔다.
권력에 의해 부당하게 감춰진 진실이 있다면 밝히는 게 당연하다. 금감원의 이번 라임펀드 등 사모펀드 관련 검사도 일견 그런 측면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졌다. 내년 총선 출마가 유력하다는 관측도 많다. 전 정부 시절 제기된 의혹에 접근하려면 합리성과 객관성은 물론 정교함까지 갖춰야 불필요한 오해를 피할 수 있다.
금감원은 지난 24일 자료에서 라임펀드가 투자한 회사에서 이뤄진 횡령 의혹도 제기했다. 투자금 회수를 위해 조사가 필요했을 수 있지만 금융회사가 아닌 일반회사에서 발생한 횡령 사실은 엄밀히 따지면 금감원 소관이 아니라 검찰로 넘겨야 할 사안이다. 정황증거에만 근거한 옵티머스펀드와 관련된 개인들의 비리 의혹 역시 마찬가지다.
검찰이 금융계좌 정보를 얻으려면 법원의 영장이 필요하다. 금감원은 불공정거래 규제를 위해 영장 없이 금융계좌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금감원이 횡령 사실을 파악했다면 관련 자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에 대해서도 조사가 이뤄졌을 수 있다. 검찰은 24일 금감원을 압수수색해 관련 자료를 가져갔다. 영장 없이 계좌정보를 가져갔다면 절묘한 공조다.
지난 정부 청와대 고위관계자들까지 연루된 디스커버리펀드의 ‘돌려막기’ 의혹 제기는 구체적인 근거가 부족해 보인다. 엄청난 피해자를 양산한 사건이고 권력의 개입까지 의심된다면 설득력 있는 근거들이 충분히 제시될 필요가 있다. 아직 명확한 증거를 확인하지 못했다면 굳이 설익은 내용을 밝혀 오해를 살 이유는 없어 보인다. 자칫 ‘금감원장 이복현’인지 ‘예비정치인 이복현’인지 헛갈릴 수 있다.